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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정치

[시사진단] 제국의 아류, 민주시민 간 협치로 대응해야

가톨릭정론지, 가톨릭평화신문제 1526 호 2019년 0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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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제국의 아류, 민주시민 간 협치로 대응해야



(김태균, 그레고리오,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의 경제 보복이 거침없다.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임이 틀림없다. 혹자는 미리 대처할 수 있었던 위기였다며 자책한다. 과연 이 난국이 우리 정부만의 탓일까?

한나 아렌트가 밝힌 전체주의의 기원은 우리가 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국가 간 힘의 균형이 깨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이성적인 사고보다 ‘스트롱맨(strong man)’이 앞장서는 제국주의의 본성이 민주사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작금의 세계는 스트롱맨의 전성기이다. 도미노 현상처럼 트럼프가 중국에 무역보복을 시작하자 아베도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징용공 보복을 시작하고 있다.

이 중 일본이 가장 무서운 것은 제국주의의 아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독점한 비민주적 엘리트 혁명으로 제국 대열에 뒤늦게 합류했다. 일본 역사상 단 한 차례의 시민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제국의 아류는 제국 운영의 기본 수칙을 쉽게 무시하고 일본이 이끄는 계층적 위계질서를 이웃 국가에 관철하려 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1946년에 출간한 「국화와 칼」에서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며 계층적 위계질서의 선구자인 일본이 뒤처진 중국과 한국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일본식 제국주의의 본성을 간파했다


이는 전후에도 일본 우파의 DNA에 남았다.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자민당의 독주를 막은 경우가 단 세 번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 비자민당 내각의 기간을 합쳐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전후 70여 년 중 68년을 일본 자민당이 집권했다. 옥스퍼드대학의 아더 스톡윈 교수는 1990년에 조사된 일당지배(one-party dominance) 국가였던 다섯 국가 중 현재도 일당지배 정치공학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고 설파했다.

언론 통제도 악화일로이다. 세계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일본의 언론 자유 순위는 2011년 32위에서 2019년 67위로 두 배 이상 하락했다. 정치사회의 일당지배 체제는 하향식 사회관리공학을 발달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여 길든 시민성을 양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제국의 아류가 본성을 나타낸 이유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가 일본에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북미회담과 남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 과정에서 일본은 이렇다 할만한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위협론을 강조해 국내 지지세력을 규합해 일본이 처한 국내외 정세를 돌파하기 위하여 문재인 정부를 반일 정부로 낙인 찍은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한일 관계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국은 내부적 비난과 극일이 아닌 새로운 이정표를 준비해야 한다. 1965년의 구체제로는 극단적인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된 제로섬 게임에 파묻히게 된다. 새로운 동반자로서 관계를 모색해야 할 시기가 조금 빨리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차가운 지성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민족주의의 부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의 아류를 상대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일희일비하지 말고 담담히 대오를 갖추자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는 양국의 건강한 시민사회가 적극적인 연대와 소통을 통해 민주시민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정부 대 정부의 강 대 강 대립을 민주시민 간 협치로서 풀어나가야 한다.

제국의 아류와 비정상의 정상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 스스로 변화의 중심이 돼야 한다. 새로운 한일 관계의 주체는 양국의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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