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歲時風俗) 예로부터 해마다 관례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 집단적 공동적으로 집집마다 촌락마다 또는 민족적으로 관행 되는 것이 상례이다.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세시풍속은 예로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며, 또 옛 문헌에 보이는 것 중에는 이름만 남아 있고, 현재 행하지 않는 것도 많다.
한민족에 의하여 발생되고 전승되어 오는 고유한 것도 많지만 외국과의 교류에 의하여 전래된 것도 있고, 또 이 외래의 것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 민족의 색채가 가미되어 있는 것도 많다. 이러한 세시풍속은 주로 농경문화와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세시풍속은 마을 사람들끼리 유대를 돈독하게 함으로써, 농사일을 서로 도우며 수확량을 증대한다.
①정월 행사
설날에는 일가 친척 및 친지를 만나면 '덕담'이라 하여 서로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를 서로 하고, 설날의 놀이로서 남녀가 만나면 서로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들은 윷놀이를 하며, 남를 사서 벽에 걸어두는데 이를 ' 복조리'라고 하며, 그해의 신수를 보기 위해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또, 농가에서는 '과일나무 시집보낸다'를 하여 과일나무 사이에 돌을 끼우는데 이렇게 하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첫째 날은 '쥐불'이라 하여 농촌의 밭이나 논두렁에 짚을 흩어 놓고 불을 놓아 잡초를 태워서 들판의 쥐와 논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입춘 날에는 '입춘 써 붙이기' 라 하여 대문, 난간, 기둥에 봄을 축하하는 글귀를 써 붙인다.
또 보름 전날 농가에서는 그 해의 오곡이 풍성하여 거두어들인 노적이 높이 쌓이라는 뜻으로 '볏가릿대'를 세우며, 이 날 밤에는 성변설상 액년에 당하는 이는 양법으로 재웅을 받들어 그 속에 약간의 돈과 함께 액년에 당하는 이는 양법으로 재웅을 만들어 그 속에 약간의 돈과 함께 액년에 당하는 이의 성명, 생년월일시를 적어 넣어 길가나 다리 밑에 버린다.
자정이 지나 15일이 되면 각 마을에서는 마을 제단에서 동신제를 지내고, 보름날 새벽에는 귀밝이술이라 하여 술 한잔씩 마시며, '부럼을 깬다'하여 날밤, 호두, 은행, 잣 등 굳은 껍질의 과일을 깨물고 '약밥'을 해먹는다. ] 동네 안의 악기를 진압하여 연중 무사하기를 비는 뜻으로 '사자놀음', '지신밟기', '들 놀음', '매귀놀음' 등을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로서 '줄다리기', '횃불싸움' 등을 하며, 어촌에서는 그 해의 풍어를 비는 뜻에서 '풍어놀이'를 한다.
또 보름날 밤에는 동산에 올라가 달 떠오르는 것을 맞이하여 달빛을 보고 그 해의 풍흉을 점치며, 다리가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뜻으로 '다리 밟기'를 한다.
②2월 행사
③3월 행사
④4월 행사
⑤5월 행사
13일은 '대 심는 날'이라 하여, 이날 대를 심으며, 이 달에는 소녀들이 봉숭아꽃을 따서 봉숭아물을 들인다.
각 가정에서는 이 날 유두면, 수단, 건단, 상화떡 등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는다.
복중에는 '팥죽'을 쑤어 먹고, 고사리를 넣어 '개장'을 끌여먹고, '계삼탕'도 먹는다.
허리 아픈 노인들은 해안지대 백사장에 가서 '모레 뜸질'을 하고, 빈혈증이나 위장병이 있는 이들은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마신다.
⑦7월 행사
15일은 '백중'이라 하여 절에서는 중들이 100가지 과일과 나물을 갖추어 부처에게 공양을 한다.
또 우란 분회 성대하게 배 푼다. 농민들은 이날을 '호미씻이'라 하여 음식을 장만해서 산기슭 들판에 나가 농악을 울리며 하루를 즐긴다.
⑩10월 행사
⑪11월 행사
동지는 고대(古代) 시절에 설{원단(元旦)}로 삼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아세(亞歲: 작은 설)라고도 합니다.
특히 민간(民間)에서는 동지 팥죽이라 하여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날 자정(子正)을 넘기면 정월 보름까지 독촉을 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제야(除夜)의 종(鐘)은 본래 각 절에서 108번을 치는 것에서 유래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와 전통(傳統)의 보전 차원에서 행해지는 서울 보신각(寶信閣)의 33번 타종(打鐘)도 본래 제석(除夕)에 행해졌기에, 양력(陽曆)으로 12월 31일에 행해지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세시풍속에는 일반적으로 행하는 것이 있고, 지방 또는 직업에 한정되어 행하는 것이 있고, 지방 또는 직업에 한정되어 행하는 특수한 것도 잇다. 변화한 도시 생활자와 소박한 지방 생활자간에는 세시풍속이 다르게 행하여지는데 이것은 도시 사람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2대, 3대가 같이 사는 일이 적고 직업 또한 각각 다르며 일상생활 또한 바쁘므로 세시풍속도 형식에 그치기 쉬우나 지방 사람들은 그 지방에서 출생한 사람들이 많고, 선조때 부타 같은곳에서 살고, 같은 직업에 종사하므로, 선조가 남긴 습관을 지키는데 충실하고, 이른바 보수적인 심리가 강하므로 세시풍속도 잘 지켜지고 있다. 정월대보름에 지방사람들은 저녁 일찍이 동산에 올라 가서 달맞이를 하지만 도회지에서는 그와 같은 장소도,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지방 특유의 각종 놀이의 일례를 들면, 정월 대보름의 풍월놀이는 어민들에게는 중요하지만, 농가에서는 별 관계가 없고, 6월 15일 전답제나 7월 15일의 호미씻이는 농민들에게는 중요한 행사이나 반대로 어민들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다. 또 4월 초파일의 '관등놀이'는 불교신자들에게는 중요한 행사이지만, 그 반대로 유교 도들에게는 이들의 행사는 별로 관계가 없고, 문묘석진제는 유교 도들에게는 중요하지만, 그 반대로 불료 신자에게는 별 중요성이 없다. 이와 같이 한국의 세시풍속 중에는 국민 대다수가 행하는 일반적인 행사가 있는 반면, 개인이나 소속에 따라서 행하여지는 특수한 행사도 있다.
[고유행사와 외래행사]
이것은 모두 고유의 것이지만 이외의 외래의 것도 많다. 예컨대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정월의 설그림, 문배, 나무 시집보내기, 칠성제, 2월의 중화 절과 중화척, 춘기, 문묘석전, 3월의 한식, 4월의 욕불일, 5월의 단오부적, 우란 분회, 8월의 문묘석전, 9월의 중양절, 11월의 동지 팥죽, 12월의 나래, 해 지킴 등으로 이것은 예로부터 한국이 중국과 교통하여 중국에서 발생되고 발달한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중 불교와 관계된 것으로서 인도에서 발생하며 중국을 거쳐 들어온 욕불일, 우란 분회 등은 한국의 연중행사가 되어왔는데, 이것은 삼국시대 이후 불교가 신앙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을 말해준다.
*** 24 절기표 ***
|
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 세시풍속(歲時風俗)
출처 : Gregory Kim
글쓴이 : 조지안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