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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 및 내용 요약정리
정의란 무엇인가 제 10장 - 정의와 공동선(펌글)BJune 2018. 11. 1. 12:08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케네디는 “어떤 종교 신념을 갖고 있는지는 사적인 문제이며,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념이) 공적 책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톨릭 신자였던 존 F.케네디는 ‘바티칸이 미국의 정치에 직ㆍ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공적인 정책에 가톨릭의 교리가 반영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떨치기 위해 위와 같이 말했다.
46년 후, 존 F.케네디와 동일한 지위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선 버락 오바마는 오히려 종교와 정치 논의의 관련성을 역설했다. 오바마는 종교가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수사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 문제의 경우에는 도덕적 문제로 치환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오바마의 입장은, “‘빈곤, 인종 차별, 건강 보험, 실업’ 등과 같은 문제를 다루려면 ‘가슴과 머리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도덕적ㆍ종교적 신념이 정치와 법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고 역설한 부분에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존 F.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는 둘 다 미국인을 결집해 시민이 참여하는 새 시대를 열고자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지만, 정치에서 종교의 역할에 관해서는 위와 같이 매우 다른 견해를 보였다.
종교를 사적인 것으로 보는 케네디의 견해는 단순히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1960~1970년대에는, 정부는 도덕적ㆍ종교적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 무엇이 좋은 삶인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철학이 공공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중립적 입장은 정치권의 양당에서 나타났는데, 일반적으로 공화당은 경제 정책에서, 민주당은 사회ㆍ문화적 주제에서 이를 주장했다.
1971년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자유주의적 중립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옹호했다. 롤스는 개인의 삶에서 “애정ㆍ헌신ㆍ충성을 배제하지 않는, 아니, 배제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정의와 권리를 토론할 때는 개인의 도덕적ㆍ종교적 신념은 접어 두고, 특정한 충성ㆍ애착ㆍ좋은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로 독립적인 ‘인간에 대한 정치적 관념’으로 보는 관점에서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보았다. 롤스는 모든 시민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만 내세울 때, 우리의 정치적 주장이 공적 이성의 요구에 부합한다고 제시했지만,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 및 평판은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민들에게는 등한시되었고 더 큰 의미의 공적 삶에 대한 열망에도 부응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는 자유주의적 중립을 뛰어넘어 진보주의자들이 신앙 친화적인 공적 이성을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샌델에 따르면,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첫째,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둘째,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 잘못되었다. 우선적으로 낙태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란에서 선택의 자유를 지지하는 입장은 문제의 바탕이 되는 도덕적ㆍ신학적 문제에 실제로 중립적이지 않다. 낙태를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발달 중인 태아도 인간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잘못임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배아 줄기세포 연구 허용 문제 역시 어느 순간부터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도덕적ㆍ종교적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즉, 낙태와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법적인 문제는 해당 행위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기 때문에 그 밑바탕에 있는 도덕적ㆍ종교적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자유주의적 중립 주장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이러한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며, 그 외에는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타당하지 않다.
만약 결혼이 도덕적ㆍ종교적 문제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합의와 관련된 문제라면, 국가가 승인하는 혼인제를 폐지하고 모든 동성 및 이성 간의 결혼을 시민 결합으로 대체되는 것이 가장 부합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동성 결혼 찬반 양측 모두가 제안에 대해 미온적이라는 사실은 결혼이 전적으로 사적 영역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정부가 자발적이고 사적인 모든 관계의 도덕적 가치에 진정으로 ‘중립’을 지킨다면, 국가는 결혼에 대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서 국가의 논의는 일부다처나 일처다부에 대한 논의와 선을 긋는다. 이는 동성 결혼 논쟁의 진짜 쟁점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동성 결합이 공동체로부터 영예와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 즉 결혼이라는 사회제도의 목적을 수행하는가의 여부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는 어떤 것을 사회적으로 승인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는 결혼의 목적에 중립을 지키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결혼의 본질은 출산이 아니라 이성이든 동성이든 두 사람 사이의 독점적인 사랑의 약속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중립에서 벗어나 동성애도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동성 결혼은 비차별과 선택의 자유에 기댈 수 없음을 보여주며, 누가 결혼할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려면, 결혼의 목적과 결혼이 칭송하는 미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는 공리주의적 접근 방식의 첫 번째 단점인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해결할 수 있지만, 두 번째 문제인 인간의 모든 선을 하나의 통일된 가치 척도로 환산해 획일화하여, 그 질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어떤’ 권리가 공리주의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중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몇몇 권리들은 기본적인 것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인다. 하지만 이 이론들은 사람들의 기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래서 우리가 공적 삶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취향과 욕구에 의문을 가지거나 시험해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의 도덕적 가치,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의미의 중요성,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질과 특성은 하나같이 정의를 논하는 영역을 벗어난다.
샌델은 이 부분이 실수로 보이며,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이견을 기꺼이 수용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에서 정의에 판단이 개입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으며, 정의는 올바른 배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로 이야기될 수 있다.
어떤 정치 담론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끄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첫째는 관찰이다. 케네디는 이에 대해서 시대의 현실 안주 및 물질적 집착을 향해 도덕적 비난을 가함으로써, 빈곤ㆍ베트남 전쟁ㆍ인종 차별의 부당함이 시대 현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를 보였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시민 의식과 희생, 그리고 봉사 정신을 키움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시장과 전혀 다른 기준의 지배를 받던 전통적 삶의 영역까지 시장 논리 및 시장 친화적 사고가 파고든다는 사실(ex.장학금, 가치의 지배 현상)을 직시하고, 이를 공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와야 한다. 세 번째로는 불평등, 연대, 시민의 미덕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덕적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정부가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란 불가능하지만,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정치는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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