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27)본당 공동체에 관한 신학적 단상
본당 쇄신, 구성원 마음 모아 하느님 뜻 살아내는 것이 최선
전례·모임 참여자 줄어들면서 활기와 역동성 점차 감소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겠지만 본당의 목적·지향 놓쳐서는 아닐까
본당 구조의 쇄신과 더불어 구성원들의 회심 적극 요청
본당 현실에 대해 질문·성찰하고 구성원 역할·태도 재검토해야
■ 본당 경험과 사목의 문제
본당 사제로 8년을 살았다. 짧은(?) 본당 경험이었지만, 신학교 선생 시절 동료 교수 신부들 가운데 그래도 가장 긴 본당 사목 경험을 가진 신부였다. 신학교는 신학과 영성과 인성을 종합적으로 교육하는 공간이다. 단순히 현장 사목을 위한 실습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신학교 양성 과정 안에, 사제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본당 사목에 대한 정밀한 이해와 교육이 조금 부족하다는 인상이다.
경험은 체화(體化)를 통해서 산 경험이 된다. 경험은 사유와 성찰과 공부를 통해서 구체화 되고 교훈이 된다. 경험은 머리와 마음과 몸을 통하지 않으면 죽은 경험이 된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찰되지 않은 경험은 오히려 우리를 고집스럽게 할 위험이 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자기 경험의 울타리에 빠져 다른 것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목격한다. 성찰과 공부 없이 그저 반복되는 경험은 습관화, 관습화의 폐해만 낳을 뿐이다. 오랜 본당 사목 경험이 역설적으로 사목적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위험으로 작동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코로나 시대의 본당
신앙생활의 대부분은 본당에서 이루어진다. 가정교회도 있지만, 우리가 가시적으로 경험하는 교회는 본당이다. 본당은 가톨릭 신앙의 중심이다. 그런데 그 본당 공동체가 위기를 겪고 있다. 오늘날 겪고 있는 본당의 위기가 코로나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 누적되어왔던 본당 공동체의 위기가 코로나 사태로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본당은 조금씩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전례와 성사 생활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미사 참례자 숫자가 줄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어 일상이 정상화 된다고 해도, 코로나 시절의 신앙생활에 익숙해진 신자들이 예전의 신앙생활로 모두 복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통계와 여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본당 생활에 조금 미지근했던 신자들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본당 생활에서 이탈할 위험이 많다는 전망이다.
실제 본당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것들은, 미사, 다양한 신심 활동과 봉사 활동, 친교와 친목 모임, 구역과 반 모임, 성경 공부, 예비신자 교육 등이다. 오늘날 본당의 위기란, 결국 본당 중심의 전례와 모임과 행사에 참여자가 줄어든다는 것이며, 본당 안에 활기와 역동성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자의 감소와 활기와 역동성의 축소는 긴밀한 관계를 갖지만,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참여자가 증가한다고 해서 활기와 역동성이 늘어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숫자의 증가에 따른 활기와 역동성은 물질주의적 자본주의 성장 논리에 불과할 수 있다. 어쩌면 오늘날 본당의 위기는 본당에서 수행되는 모든 것들이 그 진정한 목적과 지향을 놓치고 있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 본당의 본질과 목적과 지향
코로나 사태는 다시 한번 본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본당의 목적과 지향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본당은 그 지역에서 사는 교회의 현존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 생활이 성장하는 장소이며, 대화와 선포, 아낌없는 사랑 실천, 그리고 예배와 기념이 이루어지는 장소다.”(「복음의 기쁨」 28항) 본당은 친교와 참여의 장소이며 복음화(선교)를 지향해야 한다.(「복음의 기쁨」 28항) 즉, 본당은 시노달리타스의 핵심 주제인 친교, 참여, 사명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제도는 언제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본당은 친교와 참여와 복음화 사명을 위해 존재한다. 본당의 유지와 관리와 운영은 부차적 문제다. 제도의 본질은 그 제도가 지향하는 목적과 사명 수행에 달려있다. 교회 공동체가 본당이라는 제도를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놓쳐버리고, 그 외형적 유지만을 집착할 때 위기가 온다. 본당의 본질과 사명을 수행하려는 목적은 사라지고 본당의 전통적 형식만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 본당의 활기와 역동성은 축소된다. 본당이라는 시스템의 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당이 갖는 원래의 목적과 지향을 다시 상기하면서 그 목적과 지향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내자는 뜻이다. 본당이 ‘자기 보존’에 매몰되지 말고 ‘복음화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것을 ‘본당 공동체의 사목적 회심’이라 부른다.
■ 본당 공동체의 회심
교황청 성직자성 훈령인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봉사하는 본당 공동체의 사목적 회심」은 오늘날 본당이 처해 있는 현실을 진단하고 다양한 제안을 하고 있다. “본당 사목구는 지난날과 같이 모임과 사교의 으뜸가는 곳이 아니기에 동행과 친교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14항) “본당 사목구가 복음화의 영적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자기중심적이고 화석화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17항) 본당 구조가 행사중심으로 함몰되는 것을 피해야 하고(34항), 관료적이고 위압적인 방식을 버려야 하고, 사목 활동이 성직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37-38항)
본당 구조의 쇄신과 더불어 구성원들의 회심이 요청된다. 무엇보다 성직자의 사목적 회심이 가장 필요하다. 오늘날 본당 신부들은 미사, 신자 관리와 재정 문제, 본당 행사에 매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지친다. 속된 표현을 사용하면, 미사 드리는 기계와 인사와 재정 관리자로서 살아간다. 복음화, 신앙 교육, 참된 친교와 봉사라는 목적과 지향을 자주 놓치고 산다. 본당의 현실은 사제들을 복음 선포자로 살게 하기보다 관리자와 운영자의 모습으로 살게 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제도와 구조의 문제일까? 아니면 지속적 양성의 부재와 공부와 성찰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성직자들의 신원 의식의 약화에서 빚어지는 것일까? 관리자가 아니라 현장 사목자로 살아가기 위한 발상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본당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질문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본당은 진정한 친교와 참여와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지?” 그저 정직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하기만 해도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또한, 본당 공동체 안의 수도자와 신자들의 역할과 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요청된다. 문제 해결과 대안 제시는 어느 특정인의 몫이 아니다. 주교, 사제, 신학자, 수도자, 평신도가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이 해결책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만능 프로그램은 없다. 법과 제도의 변화는 언제나 나중이다. 공부와 성찰과 교육을 통한 회심과, 본당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과 스타일의 변화가 먼저다. 회심과 스타일의 변화는 언젠가 법과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예수님 역시 새로운 제도와 프로그램의 창시자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살아내는 방식의 혁명적 변주자였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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