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14)다중 우주론의 출현/발행일2022-07-10 [제3302호, 14면]
무한개 우주에서 인류 원리 만족하는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
거대 우주 속 각기 특성 다른 여러 작은 우주들이 있고
생명체 허용하는 특성 지닌 하나 이상 우주 존재한다는 것
과연 과학적 설득력 있을까
우리는 지난번에 인류 원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인류 원리란 생명체, 특히 인류가 우주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미세 조율된 필연적 생명체 생존 조건’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말합니다. 인류 원리는 1974년 호주의 물리학자 브랜든 카터(Brandon Carter; 1942~)에 의해 처음 명명된 이래로 과학자들에 따라 여러 다른 버전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어느 누구도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원리’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리처드 도킨스조차도 현대 우주론에서 인류 원리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평범 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이 특별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불행히도 평범 원리는 ‘인본’ 원리에 밀려나 무력해진 상태다. 인본 원리는 우리 태양계가 사실상 우주에서 유일한 행성계이며, 이곳이 바로 그런 문제들에 골몰하는 우리가 살아가게 되어 있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으로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114~115쪽) 여기서 말하는 인본 원리가 인류 원리입니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작업들은 인류 원리에 관한 유신론적 해석, 즉 ‘인간 및 생명체가 지구에만 생존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창조주의 의도적인 계획 혹은 설계자의 치밀한 설계에 의한 것이다’라는 식의 해석이 널리 퍼져나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결국 여러 유신론적 과학자들과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옹호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신론자들 측이 인류 원리를 열렬히 환영한 대표적인 증거로는, 미국의 존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이 매년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에게 주는 소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템플턴 상(Templeton prize)을 미세 조율과 인류 원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주요 인물들인 폴 데이비스(1995년)와 존 배로(2006년), 마틴 리스(2011년)에게 수여한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폴 데이비스가 템플턴 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조롱한 적이 있습니다.
“이따금 종교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물리학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폴 데이비스의 책 「신의 마음」은 아인슈타인식의 범신론과 모호한 이신론 사이를 떠도는 듯하다. 그 책은 그에게 템플턴 상(템플턴 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상금이 꽤 많은 상으로서 대개 종교에 관해 멋진 말을 한 과학자에게 수여된다)을 안겨주었다.”(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34쪽)
상황이 이러다 보니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자들은 현재까지는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이 인류 원리를 적절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그들이 주장하는 무신론이 옳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으로부터 탄생한 ‘무신론적 우주론’이 바로 요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다중 우주론’(multiverse theory)입니다.
다중 우주론은 여러 다양한 버전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합니다: 사실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으며, 그 수많은 우주들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이다. 각각의 우주는 마치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비눗물로 만들어내는 비누 거품들처럼 빅뱅이라는 과정을 통해 급팽창하여 생겨나다가 나중에 수명을 다해 사라지고, 또 다른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서 급팽창하여 생겨나다가 사라진다.
이 다중 우주 아이디어는 빅뱅 직후 우주의 급팽창이라는 기존의 개념에 당시 널리 통용되던 인류 원리를 결합시킴으로써 생겨났습니다. 만일 우주가 우리의 우주 하나만 존재한다면 우주의 필연적 창조주 혹은 설계자라는 개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던 당시의 몇몇 이론물리학자들은 우주들이 무한히 많다고 상정함으로써 ‘무한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히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우리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여 우주 탄생의 필연성을 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인 것이죠.
“설계 논증(argument from design; 설계자이신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논증)은 우리의 우주가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기반한 신의 실재에 관한 논증이다. 다중 세계 논증(argument for multiple worlds)도 같은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다중 세계 논증은 실재의 전체인 거대 우주 안에 여러 작은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고 있다.
이 ‘우주들’, ‘미니 우주들’, ‘세계들’은 크기가 어마어마할 수 있다. 이런 우주가 엄청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우주들의 특성은 각기 아주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 중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우주는 생명을 허용하는 특성을 가질 것이며, 우리가 발견하게 될 생명체들은 바로 이 생명을 허용하는 우주 안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마치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 우주는 단지 조만간에 (그 우주의 특성이) 예상될 종류의 것이다. 타자기를 주고서 충분히 오랜 시간을 주면 원숭이조차도 소네트(sonnet)를 작곡할 것이다.”(캐나다의 철학자 존 레슬리)
이렇듯이 사실상 무한개의 우주들 가운데 아주 예외적으로 인류 원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우리 우주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말하면 우연성에 기반하고도 우리 우주의 인류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중 우주론은 과학적 설득력을 갖춘 이론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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