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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단카이 세대들의 은퇴 후 10만 시간 활용법

펌글입니다(행복한 은퇴발전소)

일본 단카이 세대들의 '은퇴 후 10만 시간' 활용법

글 : 김웅철 /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17-12-26

글 : 김웅철 /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17-12-26

은퇴 후 10만 시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상품이 아니라 시간을 팝니다.’ 


일본의 대형 유통회사 ‘이온(AEON)’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중·장년층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문구다. 시간을 판다? 도쿄 동쪽의 가사이(葛西)라는 곳에 있는 ‘이온 가사이점’을 가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4층 건물인 이곳의 맨 위층에는 ‘G.G몰’로 불리는 시니어 맞춤형 쇼핑몰이 있다. ‘G.G’는 ‘그랜드 제너레이션(Grand Generation)’의 줄임말로, 일본의 한 유명 방송작가가 55~69세 장년층을 ‘위엄 있는 최상층(Grand) 세대’라는 뜻을 담아 ‘GG세대’라고 명명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서비스를 제공해 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는 게 이 쇼핑몰의 핵심 전략이다. 체험을 즐기다 보면 쇼핑몰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매출 증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G.G몰에는 편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있으며, 애완동물과 함께 쉴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있고, 피트니스 클럽, 컬처 교실, 365일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이벤트 홀까지 갖춰져 특별히 물건을 사거나 쇼핑을 하지 않아도 고객들은 이곳에서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컬처 교실에서는 매달 150개의 강좌가 열리는데, 어른들의 클래식 발레, 건강체조, 50세부터 시작하는 중국어, 건강 마사지, 장기·바둑, 스타 소믈리에가 안내하는 세계 와이너리 탐방, 수제 소바 제조법까지 다양하다. 악기 전문점은 악기 판매와 함께 음악 스튜디오와 음악교실을 제공한다. 스튜디오에서는 중·장년 남성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시니어 고객에게 나를 즐기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곳 가사이점의 캐치프레이즈다.


이온이 이처럼 시간과 체험을 파는 마케팅 전략을 도입한 데는 자신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활용하려는 일본의 ‘젊은 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노인, 그러니까 ‘단카이 세대’로 불리는 전후 베이비부머들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시간을 즐기려 하고 경험하려고 한다. 더구나 이들은 건강할 뿐만 아니라 생각도 젊고 지식과 재력도 갖췄다.

 

1. 도쿄 신주쿠의 게이오 백화점은 친고령자 백화점으로 유명하다. 

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움직이고 키 작은 노인들을 위해 계단의 손잡이가 낮게 설치돼 있다. 

노인들이 선호하는 생활용품이 많고 무료 셔틀과 배달 서비스도 하고 있다. 

멋지게 차려입은 여성 고령자가 이 백화점에서 중년 점원과 말을 주고받고 있다.

 

2도쿄 신주쿠에 있는 '시니어들의 아지트' 게이오백화점 전경

노인들이 선호하는 생활용품이 많고 무료 셔틀과 배달 서비스도 하고 있다. 

멋지게 차려입은 여성 고령자가 이 백화점에서 중년 점원과 말을 주고받고 있다.

 

3. '시간과 체험을 판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령자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는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 이온의가사이점. 이곳 4층에 있는 널찍한 서점을 찾은 고령자들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4. 일본 고령자들은 다양한 취미클럽에 가입해 노후의 자유시간을 즐기고 있다.

고령자 그림모임의 한 여성회원이 도쿄 시내의 와세다대학 건물에서 교실 내부를 스케치하고 있다.


10만 시간술의 핵심은 ‘평생 현역’

보통 은퇴 후에는 10만 시간(혹자는 8만 시간)이라는 긴 자유시간이 주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젊은 노인들이 10만 시간에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지, 그들의 ‘노후 시간술(術)’을 들여다본다. 환갑을 목전에 둔 한국 베이비부머의 대표주자 ‘58년 개띠’들에게도 참고가 될 듯하다. 

 

 일본 단카이 세대 10만 시간술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평생 현역’이다. 말 그대로 평생 일한다는 것이다(물론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만). 일본도 은퇴자들이 일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생계를 위해서’다. 그래서 하류노인이네 과로노인이네 하는 부정적인 말들이 서점가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넉넉한 은퇴자’들도 일 없는 무료함의 고통을 알기에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어 한다.

일본에서의 평생 현역은 크게 3가지 틀에서 실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재취업이다. 일본은 법(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2013년 4월부터 정년을 사실상 65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60세 정년 이후에도 정년자가 희망할 경우 65세까지 계속 고용을 의무화한 것. 


하지만 정부의 정책이 나오기 이전부터 정년을 70세로 하거나 아예 정년을 없앤 기업들이 적지 않다. 주로 기술을 보유한 숙련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에어컨 제조업체인 다이킨공업은 시니어 직원을 위한 유연근무제를 적극 도입하고, ‘시니어 스킬 스페셜리스트’라는 제도를 통해 70세 이상 고령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친고령자 채용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평생 현역의 또 하나의 수단은 창업이다. 일본의 2016년 중소기업 백서에 나오는 연령별 창업자를 보면 60세 이상 시니어가 전체의 32%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인생 2막에 성공 신화를 쓰겠다는 ‘과욕’을 부리기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소소한 수입을 올리는 데 만족한다. 이른바 ‘로 리스크, 로 리턴(Low Risk, Low Return)’형 기업인 셈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프티(Petit, 소규모란 뜻) 창업’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대부분 1인 기업이 많고 사무실은 공유 스페이스를 이용하면서 고정비를 최소화한다. 분야는 현역 시절 했던 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NPO(Non Profit Organization) 법인을 설립하는 사회공헌형 비즈니스도 일본의 젊은 노인들이 주목하는 평생 현역 일자리다. 일본은 지난 1998년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을 제정해 환경, 간병, 교육 등 몇 개 분야에서 NPO 법인 설립을 촉진해왔다. 


현재 전국에 4만 개가 넘는 NPO 법인이 활동 중인데, 주로 고령자 간병과 같이 지역이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가 임종을 지원하거나, 추억의 미니 영화관을 운영하거나, 시니어 기자 활동을 지원하는 등 그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10만 시간의 특권과 자유, ‘나만을 위한 시간’  

물론 일이 삶에 보람을 주고 무료함을 덜어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10만 시간의 특권과 자유를 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일본 단카이 세대들은 은퇴 후 10만 시간을 가족이나 사회가 아닌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만끽하려고 한다.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만큼 대담하게 시간을 쓰고, 직장에서 일하던 시절에 억눌렀던 욕구를 과감히 분출하며, 자신의 장례도 스스로 챙기는 등 시간을 주도적으로 쓴다.

단카이 세대의 이 같은 적극적인 활동을 일본에서는 ‘시활’(時活)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활’은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것으로, 물질적인 것보다 시간이나 체험에 가치를 둔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활’(活)자를 사용해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면 취업활동을 ‘취활’(就活), 결혼을 위한 노력이나 활동을 ‘혼활’(婚活)이라고 부른다. 


단카이 세대의 ‘시활’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3가지 정도의 키워드를 꼽을 수 있다. 학습, 취미, 웰다잉이 그것이다.

일본의 젊은 노인들은 기존의 선배 노인들에 비해 지적 호기심이 강하다. 또 지적 활동을 통해 얻은 만족감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배움에 돈과 시간 등 적잖은 노후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시니어들의 해외 유학 열기가 뜨겁다. 퇴직 후 시간에 여유가 생긴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해외 유학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해외 유학이란 영어 등 어학을 배우는 해외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말하는데, 3주에서 길게는 3개월 정도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어학 공부와 문화 체험을 하는 것이다. 한 달 기준으로 약 500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그야말로 시간과 돈을 대담하게 쓰는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요즘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심 학원가에는 50세 이상의 장년층이 젊은 학생들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특히 영어 등 외국어 회화 학원의 경우 수강자 3명 중 1명이 환갑을 넘긴 시니어들이라고 한다.


지자체에서도 이들 단카이 세대의 배움에 대한 열정에 대응해 지역 대학과 연계해 퇴직 후 지역으로 귀환한 젊은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도쿄 스기나미구의 ‘스기나미 지역대학’이나 기타큐슈시의 ‘평생 현역의 꿈 실현 학원’ 등은 주로 퇴직 후 지역으로 돌아온 베이비부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학교들은 단순히 학습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업 수료 후 지역의 관련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매칭 사업까지 제공하고 있다. 



시활의 두 번째 키워드는 취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은퇴한 일본 단카이 세대의 취미 활동이 의외로 젊고 과감하다는 것. 젊은이들도 동경하는 최고급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을 강습하는 도쿄의 한 자동차 교습소에 개설된 65세 이상 고령자 대상 코스에는 매년 1000여 명의 수강생이 몰리고 있다. 


과거 고령자들이 안전과 체력을 이유로 거리를 뒀던 승마에 도전장을 내미는 겁 없는 고령자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승마클럽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체력에 맞는 기초운동과 기술 습득을 가르치는 고령자 상품을 내놓고 있다.



단카이 세대의 시활에서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웰다잉 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항목이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을 ‘종활(終活)’이라고 부르는데, 젊은 노인들은 자신의 죽음마저도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묏자리를 미리 정하고 묘지의 이웃이 될 이들과 생전에 ‘묘 친구’가 되는가 하면, 혼자 사는 젊은 노인들은 ‘생전 계약(生前契約)’을 통해 자신의 사후에 필요한 장례 절차를 미리 계약해두기도 한다. 불시에 병고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의사결정을 대신해줄 후견인을 선정하거나, 자신이 죽은 후 홀로 남겨질 애완동물의 케어에 관한 대응책까지도 마련해두는 세심한 노인들도 있다. 


소중한 재산 10만 시간 ‘더 대담하고 즐겁게’

요즘 일본에서는 1970~80년대 일본의 청춘들을 열광시켰던 디스코 붐이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다. 호텔이나 DJ들이 기획한 ‘디스코 이벤트’에는 수백 명에서 천 명이 훌쩍 넘는 남녀 시니어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추억의 댄스곡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며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등 열광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한다. 


황혼의 사랑을 위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짝을 찾아나서는 시니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혼자 된 ‘젊은 노인’이 수십 년의 여생을 홀로 지낸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신체가 건강한 젊은 실버들은 사랑도 추구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시니어 싱글’, 즉 독신 장년층이 결혼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등장했고, 결혼 정보 업체들은 커플이 함께 걷는 워킹 프로그램, 가라오케(노래방) 소개팅, 남녀 동반 골프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커플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도심 러브호텔의 주 고객층으로 시니어 커플들이 부상하고 있다. 커플 중 어느 한쪽이 60세 이상이면 요금을 할인해주는 시니어 요금제가 등장하는가 하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계단에 난간을 설치하거나 호텔 룸의 테이블을 곡선으로 교체하고 TV 리모컨도 글씨가 큰 것으로 바꾸는 등 시설 면에서도 고령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퇴 후 10만 시간은 직장에 몸담고 있던 시절의 시간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황금의 시간이 될 수도,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은퇴를 전후한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도 대담하고, 젊고 즐겁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10만 시간이라는 재산을 활용하길 바란다.

 

김웅철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同대학 대학원 사회학 석사.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 국제부장 등 역임. 현재 매경비즈 교육총괄부장. ‘노인대국 일본’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과 책을 쓰면서, 인류가 직면할 초고령사회의 모습과 해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아직도 상사인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보는 아내》등 다수의 일본 서적을 번역했으며, 저서에는 《일본어 회화 무작정 따라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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