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시선2035] 나이는 왜 ‘먹는’걸까
[시선2035] 나이는 왜 ‘먹는’걸까 [중앙일보] 입력 2019.01.09 00:28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이상한 콤플렉스다. ‘어려보인다’는 외모평가가 아니라 칭찬인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은 욕이다. 탱탱한 피부는 부(富)의 증거고 눈가 주름은 대비하지 않은 베짱이의 겨울처럼 안쓰러운 것인데 길거리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내가 누군지 알아!’ 할 게 없는 사람은 ‘너 몇살이야!’를 외친다.
아주 어린 아이들도 나이가 중요하단 걸 안다.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간 나는 여덟 살 친구들보다 키가 한 뼘쯤은 컸다. 여간해선 울지 않았다. 친구들이 치과에 가기 싫다고 집에서 울 때 나는 내 손으로 유치를 뽑아 주머니에 넣어왔다. 울기보단 울리는 쪽이었다.
감히 내 머리꽁지를 당기는 남자아이는 없었고 귀갓길에 내 신발주머니를 들어야 하는 남자아이는 있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다중밀집장소에서 울어본 건 “쟤 일곱살에 학교 들어왔대!”라는 출생의 비밀이 폭로됐을 때다. 여덟 살보다 한 살이 모자란 게 서러웠다.
서른이 되는 건 무서웠다. 이십대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양 떠드는 사회에서 스물 아홉은 ‘나이 피크제’의 꼭대기에서 곧 떨어질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2016년 12월 31일이 되면 “우리 이십대 영토에 살고 있는 88년생들 모두 벼랑 끝으로 모여!”라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전 빠른년생인데요….”하고 숨어봤자 곧 “어디서 어린 척이야!”라며 목뒷덜미를 잡힐 거다. 벼랑 앞에 선 전국의 스물아홉들은 2017년 1월 1일 0시를 기해 삼십대의 검은 바다로 일제히 추락한다. 그런 괴기한 상상을 하면서 서른을 맞았다.
사람들이 돈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에 대해 “돈을 정당하게 벌지 않는 사회에선 돈을 천하게 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 어른이 있었다. 나이도 그렇다. 나이를 제대로 먹지 않으니까 나이를 초라하게 여기고, 가치를 폄하하고, 부끄러워 가려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30년 묵은 위스키가 21년 묵은 위스키보다 값진 건 더 오랜시간 묵묵히 성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에 더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나이는 성실한 역사일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동사로 표현하는 우리말이 마음에 든다. ‘먹는다’는 건 상당히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일이다. ‘우려먹다’ ‘해먹다’ ‘막돼먹다’ ‘찜쪄먹다’ 같은 단어에 ‘먹다’가 등장하는 것도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이를 하루하루 꼭꼭 씹어 잘 먹어야 겠다. 지난해의 나를 부러워하지 않겠다.
문현경 탐사보도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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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혀서 블로그저자의 말
나이는 왜 먹는것이 아니고 해가 가면 좋든 싫든 무조건 먹는것이 나이다
에고~~~
나도 나이먹기 싫다
떡국을 여지껏 실지로 몇 그릇밖에 안먹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