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론스타와 외환은행에 얽힌 근본적 의혹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장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제기한 5조원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중재(ISDS)’가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거의 잊혀진 사건인 외환은행 불법매각 사태를 정리해볼 필요가 생겼다.
외환은행 사태는 시간상으로 2002년 하반기 국민의 정부 말기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를 고려하며 시작되었고, 참여정부 때인 2003년 9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2012년 초 이명박 정부 때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가 지금 박근혜 정부에 들어 투자자-국가 간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태의 핵심은 별로 부실하지 않았던 외환은행을, 파는 사람인 외환은행의 경영진과 한국의 감독당국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겨, 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관료들이 주도해 매각한 것이다. 론스타는 이 결과 큰돈을 벌었지만 그것도 부족해 이번 분쟁과 세금 불복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감독당국은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자 론스타의 은행 인수 자격을 문제 삼아 외환은행의 미국 내 외환은행 현지법인과 지점의 은행업 허가를 취소했다. 미국에서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가 한국에서는 은행을 인수해 큰돈을 번 것이다.
외환은행은 외국환 전담은행으로 1967년 1월 설립됐으며, 한국은행이 출자하였고 영업자금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이 투입된 역사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은행이다. 또한 2003년의 외환은행은 허둥지둥 팔아야 할 정도로 부실하지 않았다.
감독당국이 수차례 수정해 가며 만든 최악의 시나리오에 의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6.16%였다. 외환은행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BIS 자기자본비율이 8%를 넘는 정상 은행이었다. 여기에다 한국의 다른 여러 은행과는 달리 해외영업 비중이 크고 기업금융과 수수료 수입이 많은 은행이었다.
은행산업의 다양성 유지를 위해 없어져서는 안 될 은행이었고, 직원의 자질과 자부심이 강한 은행이었다. 이렇게 괜찮은 외환은행이 은행 인수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이상하게 팔리는 과정에서 숱한 의혹과 의문이 생겼고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요란한 검찰수사와 감사원 감사 등이 있었지만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가장 근본적인 의혹은 누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도록 주도했느냐이다. 론스타는 텍사스에 소재한 미국의 투자펀드이지만 한국인 투자자가 들어가 있다는 것은 검찰수사 등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누가, 얼마나 투자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의 투자자들이 주도 세력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외환은행 사태는 국민의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도한 사람은 한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항상 힘을 가질 수 있는 세력인 듯하다. 과거 대선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까지 공개되고 있는 나라에서 외환은행 사태의 결정적 의혹은 정권이 바뀌어도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이 주도했는지 알 수 있다면 남은 여러 의혹들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외환은행 사태가 잘 짜인 범죄 드라마와 같다는 것이다. 사건을 언뜻 보면 주도한 세력이 누구인지 쉽게 드러나게 되어있지만 꼼꼼히 짚어보면 그들이 아닌 것이다. 즉, 사람들을 아주 혼란스럽게 만드는 복선이 있는 드라마이다. 여기에다 사건의 열쇠를 쥔 핵심인물 두 명이 검찰수사 전에 갑자기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한 명은 감독당국의 요청에 의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외환은행 BIS 자기자본비율을 추정해준 외환은행 직원이다. 다른 한 명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금융감독원 실무자이다. 두 사람은 병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소설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찜찜하기도 하다.
외환은행 사태는 의혹과 의문이 풀리지 않고 역사 속의 사건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사람이 죽고, 사회정의가 훼손되고, 금융산업은 더 나빠지고, 국력이 많이 낭비된 사건이다. 이렇게 나라와 국민은 큰 피해를 보았지만, 주도한 세력은 큰돈을 벌고 관련 관료는 출세를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자자-국가 분쟁에서 한국정부가 진다면 주도한 세력은 엄청난 돈을 더 벌고, 모두 국민의 부담이 된다.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 답답한 일이다. 누군가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어 상상 속에서라도 의혹을 풀어 주었으면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6102121145#csidx25177d805a1e7fda3b832dbaabcd4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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