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중앙일보] "뇌만 하면 반값" 시신 동결, 입소문에 400건 쇄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현대 의학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 가운데 2000년대부터 시작한 러시아의 시신 동결 서비스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에 긴 잠에서 깨어나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새 인생을 시작한다는 개념인데요.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 등에 따르면 진지하게 믿고 맡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196℃ 냉각 탱크에 시신 보관
동결을 원하는 사람은 사전에 업체와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시신을 동결하기 위해선 숨지자마자 온몸에서 혈액을 뺀 뒤 2~3주간 서서히 온도를 낮춰야 하기 때문이죠. 이후 액체질소로 냉각한 높이 3m의 탱크에 시신을 넣어 보관합니다.
크리오루스 설립자인 생물학자 이고르 아르투코프는 “유전공학 분야에서 매년 새로운 발견이 나온다”며 “(불치병 치료 등) 필요한 기술을 얻는데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소생해 가족과 재회할 수도 있다”고 닛케이에 말하는데요. 그러면서 “나도 사후 동결에 서명했다. 미래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밝힙니다.
특별히 홍보를 한 적이 없는 데도 입소문만으로 동결 서비스를 찾는 사람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현재 계약 건수는 400건이 넘고, 그중 시신 71구를 동결한 상태입니다.
가족처럼 지내던 애완동물의 동결을 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업체에 따르면 이미 40구를 동결해 보관 중입니다.
전신을 동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3만 6000달러(약 4400만원) 정도. 신체의 다른 부분은 제외하고 뇌가 있는 머리만 동결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왜 머리만 맡기는 걸까요. 로봇과 인공장기 기술이 발달하면 뇌만 살아 있어도 생명 연장이 가능할 것이란 상상에섭니다
◇겨울잠 자는 마다가스카르 원숭이
동면은 신체의 거의 모든 기능을 느리게 만듭니다. 다람쥐의 경우 1분간 호흡량이 평소 200회 정도인데 겨울잠을 잘 때는 5회 이하로 급감합니다. 심장박동 수도 1분간 300회에서 10회 이하로 줄고, 체온도 37℃에서 5℃로 내려갑니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상 거의 죽은 상태나 다름없죠. 이른바 '가사(仮死) 상태'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고나 뇌경색ㆍ심근경색 등 급성질환으로 위독한 상태인 환자를 일시적으로 동면시키면 수술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문제는 인간이 동면할 수 있는가 여부인데요. 스나가와 겐시로(砂川玄志郞) 이화학연구소 기초과학 특별연구원은 2004년 마다가스카르에서 동면하는 원숭이를 발견하고 인체 동면 연구를 시작했다고 닛케이에 밝혔습니다. 영장류의 동면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죠.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동면하지 않는 생쥐를 대상으로 인공동면 실험을 진행해왔습니다. 그 결과 생쥐는 어둡고 차가운 환경에선 평소 체내에서 생성되던 물질의 양이 점차 줄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스나가와 연구원은 “뇌에는 휴면 상태로 만들기 위한 스위치가 있는 것 같다”며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이런 가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트랜스휴머니즘과 미라가 된 레닌
“죽음을 뛰어넘어 영원한 삶을 얻는다.”
19세기 말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표도로프는 이런 불사(不死)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시ㆍ공간을 초월해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른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인데요. 장애와 질병, 노화는 물론 죽음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후 공산권에선 미라가 유행했습니다. 주로 독재자들의 우상화 작업에 쓰였습니다. 김일성ㆍ김정일 부자, 마오쩌둥과 호치민 등의 시신도 미라 상태로 보존되고 있죠.
현대과학은 미라가 아닌 동결 기술로 인간의 오래된 믿음을 현실로 만들려 합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세상이 도래한 셈이죠. 생명윤리와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아직까진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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