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찻집 《게으름의 미래: 죽도록 일 않고 필요한 만큼만...(
《게으름의 미래: 죽도록 일 않고 필요한 만큼만,
탈노동을 통한 유토피아의 복원》
ㆍ국가의 탄생 이후 필요 이상 노동에 내몰리는 인류
ㆍ인공지능 위주 4차 산업혁명시대, 기계가 육체적·지적 노동 대체
ㆍ무기력한 나태·매너리즘 아닌 지적 여유 즐기는 새 인류 기대
<피터르 브뤼헐(1526~1569년), 『식도락의 마을』(뮌헨, 알테 피나코텍 미술관). 그림 속 마을을 보면 먹을 것 천지이고 사람들은 탐식의 쾌락에 빠진 게으름뱅이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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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소파에 누워 자고, 먹고, 또 자고 먹는다. 그렇다고 밤을 새운 것도 아니다. 푹신한 침대에서 대낮이 될 때까지 자고도 말이다.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 덕분에 일할 필요는 없지만, 관리를 안 하기에 재산은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침대와 방을 떠날 수 없는 주인공. 책 50페이지가 넘어서야 드디어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책, 게으름뱅이 『오블로모프』 내용이다.
작가 이반 곤차로프(1812~1891)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매너리즘과 게으름에 빠져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쫓아가지 못한 고향 러시아에 대해서 말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산업혁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노비와 농업이 중심인 중세시대에 살고 있었다. 곤차로프는 오블로모프의 반대 인물로 절친 스톨츠를 등장시킨다
독일인 아버지 덕분에 효율적이며 부지런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톨츠. 게으름에서 벗어나도록 좋은 여성도 소개하고 농장 관리도 도와주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과부와 결혼한 오블로모프는 마치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종일 소파에 누워 아내가 해주는 삼시 세끼만 받아먹는 모습으로 소설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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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 표지(왼쪽)와 삽화>
일하지 않는 자는 밥도 먹지 말라! 부지런한 새가 벌레도 많이 잡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대한민국의 착한 어린이! 부지런하면 부자가 되지만 게으르면 굶는다. 아니, 게으른 자는 살 권리조차 없다. 부지런한 이가 착하다는 말은 동시에 게으른 자는 사악하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일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겐 욕구가 존재한다. 심리학자 메슬로우가 제안한 욕구의 5단계에서 말하는 의식주, 안전, 사랑, 자아실현 같은 것들 말이다. 자아실현이나 사랑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도 얻을 수 있겠지만, 의식주와 안전은 대부분 타인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지리산 산골에서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다면,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필요한 것을 다른 이가 가지고 있고, 그가 필요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표현하고, 우리는 그 격차를 극복할 만큼의 일과 노동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일과 노동의 기원은 지극히도 실용적이고 개인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노동은 성스럽고 게으름은 비난과 규탄을 받아야 하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 걸까?
이반 곤차로프가 조국 러시아가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삼았던 독일, 하지만 19세기에 가장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 최고 가문 출신이었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할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시대 수상이었고, 18살에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한 러셀은 수학자이자 정치가였고 노벨 문학상까지 받는다.
평생 쉬지 않고 일만 하던 그는 하지만 『게으름 찬양』이라는 에세이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인류 역사에서 진정한 발전은 끝없는 노동보다 게으름이 주는 여유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엔 하루 4시간만 일하면 충분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정말 부지런함이 인류 발전에 독이 될 수도 있는 걸까? 17세기 최고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는 오블로모프를 능가하는 게으름뱅이였다. 정오가 넘어 일어나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낸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은 부지런함이었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의 개인 선생이 된 데카르트는 여왕의 일정에 맞춰 새벽 5시에 수업을 시작해야 했고, 스웨덴 왕실에 도착한 지 몇 달 만에 폐렴으로 숨진다.
이제 궁금해진다. 인간은 언제나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았던 걸까?
케임브리지대 인류학자 제임스 서즈맨 교수는 최근 『노동: 인류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라는 책에서 호모 사피엔스 역사 대부분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일했다고 주장한다.
마치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하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 시간을 휴식과 낮잠으로 보내듯, 의식주와 안전이 확보된 과거 인류 역시 대부분 시간을 잠과 휴식으로 보냈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대부분 오블로모프였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는 필요 이상의 노동을 하기 시작한 걸까? 농업과 도시화, 그리고 종교와 국가의 탄생 덕분이었다. 무조건 과거가 좋았고, 현재가 지옥이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먹잇감을 사냥해도 어차피 보관할 수 없었기에 사냥과 채집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던 인류에게 미래 소비를 위한 추가 노동은 무의미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농업의 시작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오늘 열심히 일하면 내년에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한 추가 노동을 하기 시작한다. 미래가 현재의 삶을 장악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기원전 5천년 전 시작된 도시화와 국가의 탄생은 이런 트렌드를 가속하기 시작한다. 도시인들은 시장에서 거래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했고, 국가와 종교는 이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개인만이 배부를 정도가 아닌, 신과 국가가 만족할 만큼으로 일해야 한다고. 집단 종교와 국가는 일로 지친 이들을 불러내 거대한 동상을 세웠고, 낮잠과 여가를 즐기던 인류는 성벽과 신전을 지어야 했다.
탈-노동의 시대 창조적 게으름 피워야
물론 도시와 국가는 문명과 편안함을 가능하게 했지만, 노동 그 자체는 사실 성스럽지도, 선하지도 않다. 천국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에게 주어진 노동은 상이 아닌 벌이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알았다. 노동은 벌이고 게으름은 천국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동 그 자체가 새로운 종교가 되었기에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주장대로 게으름을 가장 멸시하는 개신교 사상을 기반으로 서유럽과 북유럽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터르 브뤼헐의 『식도락의 마을』에서 보듯 인류의 영원한 꿈은 여전히 게으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게으름의 미래는 무엇일까? 타인과 함께 생활하고 대도시로 이주하며 우리는 부지런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농업을 계기로 인류는 정착했고, 증기와 전기를 기반으로 한 1차,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농가에서 대도시로 다시 한번 이주한 인류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해지고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IT를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위주의 4차 산업혁명은 노동과 인류의 관계를 다시 과거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육체적 노동과 지적 노동력을 대체하고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는 순간 인간의 노동은 더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닌, ‘노동의 정상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30만년 호모 사피엔스 역사 중 의식주 해결을 넘는 노동이 필수였던 시절은 지난 1만 년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배부르게 먹고 낮잠 자는 사자들,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없으니 어떤 꿈을 꾸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계에 대부분 일과 노동을 넘겨준 인류 역시 다시 배고플 때까지 잠만 잔다면? 새로운 지식과 과학의 창출은 불가능하겠다. 하지만 게으름이 나태와 매너리즘이 아닌, 지적 여유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면? 게으름의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게으름이 무기력과 나태가 아닌 탈노동 시대의 새로운 인류의 모습 역시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중앙선데이, 2020. 11. 28).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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