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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에 대하여

Opinion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처방

지도자에 대하여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0:22

한국인의 정치 사랑은 유별나다. 심한 경우 상대방이 싫어하건 말건 정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자기 지지자에 대한 강변을 털어놓는 바람에 술자리에서 싸움박질하기도 한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한국인의 문제로 지적하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이런 국민 정서에 기반을 둬서 생긴 것이기에 나무랄 일만은 아닌 듯하다.

작금에 대선 주자들이 뛰기 시작하면서 정치 논란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내게도 가끔 묻는 이들이 있다. 누굴 지지하느냐고. 그동안의 정치 판도를 보며 어느 정당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면을 빌려 바람직한 지도자의 심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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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당당한 지도자. 우리나라는 미·일·중·러 4대 강국 사이에 놓여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갈등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열강의 지도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게 만들 수 있는 지도자. 남북한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고 노련하고 당당하게 판을 만들어가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배구 김연경 선수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약체인 팀, 장기판으로 따지자면 졸로 구성된 팀으로 차와 포를 다 가진 팀들을 상대하면서도 당당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

 

둘째, 그릇이 큰 지도자. 그동안 우리나라는 작은 땅덩어리 위에서 이념논쟁으로 너무나 많은 소모전을 해왔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자기 사욕을 위해 이런 분열을 부추기는 추악한 짓을 저질러왔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짧고 모욕적인 단어로 단정적인 낙인찍기를 하는 것은 인격적으로 덜떨어진 사람들이나 하는 짓인데,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런 미성숙한 행위를 생각 없이 하고 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악에 받치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추태에 지나지 않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적대감에 젖게 하는 범죄행위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도자의 정신적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도자는 국민을 이간질하고 서로에게 적대감을 가지게 하기에 반드시 걸러내야 한다.

 

셋째, 열등감이 적은 지도자.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자신이 열등감이 없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를 가진 왕자병 환자일 것이다. 문제는 열등감이 너무 심한 경우이다.

 

심한 열등감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열등감은 감정 상태인데, 피해의식을 유발한다. 특히 편집증적인 피해의식이 강해서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기 일쑤이다. 열등감이 오래 지속하고 정도가 지나치면 피해망상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권력에의 의지’에서 사람은 누구나 권력을 획득해서 자신의 뿌리 깊은 열등감을 극복하려 한다고 피력했다. 겉으로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피해의식을 만회하려는 행동이란 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며 내면의 부정적인 모습을 회피하기 위한 자구책이란 것이다.

 

이들은 묘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산다. 자신만이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편견이 적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단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사람들은 준비된 독재자이기에 걸러내야 한다.

 

넷째, 현실적 이상주의자. 이상주의자 중 몽상적 이상주의자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수를 무시하고 선동적 구호만 외친다. 이들은 깊은 신념과 정책안을 가진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집단심리를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도자가 몽상적 이상주의자일 때 아랫사람들은 뒤처리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그렇게 이룬 결과물들은 모래성 같아서 쉽게 무너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적 이상주의자이다.

 

다섯째, 토론을 즐기는 지도자. 토론이란 그 사람이 가진 식견과 성품, 자기 생각에 대한 자신감 등을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토론을 거부하고 피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설익은 상태란 것을 의미한다. 달변이라고 해서 토론의 달인은 아니다. 진심으로 문제에 대해 오랜 숙고를 한 사람이 토론에서는 승자다.

 

설전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알게 해주는 토론 자리를 마다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주입식 교육에 찌든 한국 사회를 바꾸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