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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인문학

[최영미의 어떤 시] [51] 길가메시 서사시

[최영미의 어떤 시] [51] 길가메시 서사시

네 배를 채워라,

 

즐겨라 낮에도 밤에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라

 

춤추고 놀아라 낮에도 밤에도!

 

물에 들어가 목욕하고,

 

네 머리를 씻고 깨끗한 옷을 입어라

 

네 손을 잡은 아이를 바라보고,

 

네 아내를 안고 또 안아 즐겁게 해줘라

 

- 길가메시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

 

인류의 오래된 이야기, 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의 한 장면이다. 영원한 생명을 찾아 헤매는 길가메시에게 선술집 주인 시두리는 말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인간에게 죽음을 주었다…그러니 배불리 먹고 즐겨라”

 

그 단순함에 나는 매료되었다. 먹고 씻고 사랑하라!

‘carpe diem’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허무를 바탕으로 한 현세주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특징이다.

 

중년을 지나 나는 알게 되었다.

내 손으로 머리를 감는 게 행복임을.

요양병원에서 어머니의 머리를 감기고 손톱을 깎으며 행복해하는 어미를 보고 나도 행복했는데. 코로나가 삶의 기쁨을 빼앗았다.

 

많은 학자들이 길가메시가 기원전 2800년경 우르크를 통치했던 실존인물이라고 믿고 있다. 죽지 않고 늙지 않는 영생을 얻는데 실패한 길가메시는 낙담하여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결국 불멸을 얻었으니, 500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