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신이 인간에게 준 사명 찾아가는 과정”
전채은 기자 입력 2021-10-04 03:00수정 2021-10-04 08:00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는 “많이 아는 사람,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곁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어른”이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 책은 저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달 30일 신간 에세이 ‘믿는 인간에 대하여’(흐름출판)를 펴낸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51)는 “15세에 영세를 받은 직후부터 시작된 삶에 대한 질문들을 책에 담았다”며 이렇게 밝혔다. 라틴어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시대 문화 등을 아우르는 그의 전작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은 2017년 35만 부 이상 팔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가톨릭 사제 신분이던 2010년 한국인 중 처음으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의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가 됐다. 지난달 21년 만에 사제직을 내려놓고 평신도 신분으로 돌아와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사제가 아니어도 바티칸 변호사 신분은 유지된다. 1일 동아일보 인터뷰룸에서 그를 만났다.
“종교는 정원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답지만 관리자가 심고자 하는 꽃과 나무만 존재하죠. 천주교라는 정원에서 수십 년을 누렸으니 이제는 자연에서 좀 더 자유로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대학 강의도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연구와 집필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그가 사제 신분을 포기하면서까지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유대인의 설화를 들어 “공부는 신이 인간에게 준 악보(사명)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악보를 찾는 일도 쉽지 않을뿐더러 이 악보를 어떤 악기로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배우는 과정도 녹록지 않기에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비로소 악보와 악기를 모두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간에서 그는 종교가 어떻게 인간에게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있는지, 인간이 신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등 오랜 고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그는 신에 대한 찬미보다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찬미에만 열심인 사람은 자칫 신을 충분한 찬미를 받지 못했다고 삐지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모두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사막을 걸을 때 원래 있던 길, 앞 사람이 낸 길은 모래바람이 불면 사라졌습니다. 사막의 길잡이는 땅에 난 길이 아니라 하늘의 별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누군가의 뒤를 쫓기보다 자신만의 별을 찾기를 바랍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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