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의 기획특집으로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김도현 신부님의 글을 시리즈로 올립니다
Home > 기획/특집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발행일2022-01-02 [제3276호, 16면]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1)신앙인에게 과학은 왜 필요한가?
참된 신앙 가치 지키고 선포하려면 과학 이해할 필요 있어
우리 신앙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이라는 주제 상당히 중요해
이러한 필요성 느끼는 신앙인께 권위있는 답변 해드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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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주장과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가?
신앙인에게 과학이 필요한가?
과학이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많은 이들의 인식 속에는 교회가 과학을 배척하거나 포용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새해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기획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는 과학과 신앙 간의 조화가 충분히 가능하며, 이 둘 모두가 하느님을 섬기는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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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학’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커피나 맥주를 함께 마시면서 최근까지 우리를 괴롭혀온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고 해보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중 몇 가지에 근거해서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이렇게 어물적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어떤 온도 또 어떤 상황에서 증식이 가장 잘 된다더라’라고 하면서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설명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우리는 “저 사람은 과학적으로 접근하는군” 하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는 이런 식으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들이 좀 피곤할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어떤 심각한 문제나 사안이 있을 때,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될 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될 때에는 이렇게 이성적인 추론과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서 무언가를 따지고 탐구하는 자세가 분명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짓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죠.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서 아침밥 먹고 조금 쉬다가 농사를 짓다가 또 점심 때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밥을 먹고 낮잠 좀 자다가 또 옆집에 마실도 갔다가 또 저녁이 되어서 해가 지면 저녁을 먹고 좀 있다가 자고…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큰 고민 없이 물 흘러가듯이 사는 것도 일반적으로 추천할 만한 삶이긴 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왜 올해는 유독 비가 오지 않을까, 왜 올해는 유독 병충해가 많은 걸까, 왜 올해는 유독 이렇게 비가 많이 와서 홍수 때문에 농사가 잘 안 되는 것일까 등등 살면서 분명히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 고민거리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된 이유를 밝혀내는 사람들도 분명히 필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소수의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자기 나름의 경험을 글로 남기거나 후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줌으로 해서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학문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 주변에 이 자연의 위치를 따지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상적인 추론과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서 이러한 것들을 따지고 탐구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왜 평소에는 하늘의 색깔이 파랗다가 태양이 떠오르거나 질 때에만 왜 하늘의 색깔이 빨갛게 물드는 것일까?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그런데 일반적인 하늘색은 파란색이고, 노을색은 빨간색인 이유를 알게 된 지는 불과 15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의 1870년경이 되어서야 레일리 남작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 존 윌리엄 스트럿(John William Strutt, 1842~1919)이라는 물리학자에 의해 비로소 하늘의 색깔에 관한 정확한 물리학적인 이유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1870년 이전의 사람들은 하늘의 색깔에 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나름 이런저런 근거와 이유를 따져가면서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 설명이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욱 정확한 설명을 찾아가다가 1870년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현상에 관한 완전한 근거와 이론을 확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학문들 중에서 특별히 이성적인 추론과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서 세상과 자연의 이치를 따지고 탐구하는 학문을 우리는 특별히 과학(Science)이라고 부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러 변이들 중에서 왜 하필 다른 변이도 아니고 델타 변이, 오미크론 변이가 전염성이 강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현재 아주 중요한 과학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단히 이성적이고,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이라고 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상당히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과학이 실제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대단히 필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과학적인 태도가 없다면 증권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적인 태도가 없다면 많은 이들이 그냥 전염병에 걸릴 것이고 다른 이들보다 건강하지 못한 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날 가능성도 분명히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평생을 헛되이 살다가 진정한 구원을 맛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정말 종교를 제대로 믿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과학적인 자세가 대단히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 종교 신자들의 그럴듯한 논리와 설득에 휘둘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 과학의 내용을 잘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가치와 내용을 지켜나가는 것이 사실 대단히 필요합니다. 바로 우리의 신앙을 올바로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이라는 주제는 사실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학 가운데서도 특별히 자연을 학문의 대상으로 탐구하는 과학을 우리는 자연과학이라고 부릅니다. 자연과학에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같은 학문이 있습니다.
이 학문들이 특별히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이 학문들이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대표적인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적인 내용을 잘 모르게 되면 우리는 빅뱅이라든가 진화론처럼 우리의 신앙과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런 자연과학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때에 우리가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게 되고 그러면 일방적으로 과학적 배경 지식을 갖춘 무신론자들에게 끌려다닐 가능성이 대단히 많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다니시는 본당의 신자분들 중에는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인 질문을 하면서 “이 과학의 주장과 우리 가톨릭의 가르침이 서로 충돌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이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는 바로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이제부터 권위있게 답을 해주실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의 참된 신앙을 계속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연과학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아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신앙인 여러분들을 위해 저는 올 한 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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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예수회 입회 후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필리핀 로욜라신학대학에서 교회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교수 및 가톨릭대 신학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신학, 과학을 만나다 – 현대 과학의 과점에서 본 그리스도교 신학의 새로운 해석」 등이 있다.
김도현(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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