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은 대전현충원보다 많이 작다고 하는데도 걷다보니 꽤 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적당히 봤는데도 그렇다
묘와 비석은 직위에 따라 다르다 일반군인은 유골이 묻혔고 계급이 있는 사람과 대통령은 매장이다
말하려는것은 돌아오면서 마지막으로 본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이다
'포화속으로'라는 영화를 분명히 봤는데 내 블로그에 올려있지 않았다 이때는 하도 영화를 자주봐서 VIP증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 올리지도 못하고 또 뭘봤는지도 잊어버렸다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을 보면서 기억이 나 지금이라도 올려본다
이 영화는 아주 재미나게 봤다
권상우도 나오고 가수 탑, 북한장교로 차승원이 나오는데 야비하게 안나와 멋있게 봤다
특별히 권상우가 찢어지게 가난해서 학교도 못다니는데 학도의용군으로 나오는데 이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 "나 분명 학생맞지?"
------
포화속으로 뛰어든 71명 학도병의 감동 실화
6월, 그들을 기억하라!
낙동강 사수를 위한 최후전선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가족도, 고향도, 조국도 사라진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의 패색은 짙어져만 간다. 전 세계가 제 3차대전의 공포에 휩싸이자 UN은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대한민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한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남측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사수에 모든 것을 내걸고 남은 전력을 그곳으로 총집결 시킨다.
“지금부터 이곳은 학도병 제군들이 맡는다. 우리 3사단은 낙동강전선에 투입된다.”
“우리보고 여를 지키라는 겁니까? 우리끼리만요?”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장범(최승현-T.O.P)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갑조(권상우) 무리는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총알 한 발씩을 쏴보는 것으로 사격 훈련을 마친 71명의 소년들은 군인들이 모두 떠난 포항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석대의 부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부산은 이 박무랑이가 제일 먼저 접수합네다. 766은 포항으로 진격한다!”
영덕을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국군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들은 한밤중 암흑 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깬다. 고요함이 감돌던 포항에는 이제 거대한 전운이 덮쳐 오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걱정할 틈도 없이 시시각각 모여드는 인민군 부대와 맞서야 하는데…
낙동강 전투
“더 이상 후퇴할 수도 없고 밀릴 수도 없는 마지막 방어선,
낙동강이 뚫리면 끝이다!”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낙동강 근처까지 파죽지세로 남진을 계속한다. 낙동강이 뚫리면 부산을 지켜낼 수 없는 상황. 남한군은 낙동강 사수를 위해 8월 1일 낙동강 교두보의 구축명령을 내리고, 8월 3일부터 의성, 마산, 영산, 안강, 포항, 왜관 등 경상북도 일대에서 낙동강 지지선을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 포화속으로>는 남한의 마지막 대동맥을 끊기 위해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으로 결집하고 있던 그때, 낙동강과 포항 일대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처절한 전투를 그린 전쟁실화다. 비록 전쟁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지만, 1950년 8월, ‘피바다’로 불린 그곳에서 싸웠던 이들에게 그것은 전부를 건 마지막 전투였다.
이 모든 것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
중학교 3학년 이우근 학도병의 어머니께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포항전투가 있었던 8월 11일, 71명의 학도병 중 한 명이었던 이우근 학생이 쓴 것이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열 여섯 소년의 편지에는 난생 처음 사람을 죽이고 느끼는 충격과 슬픔, 이길 수 없는 적을 향한 두려움과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가 가슴 절절하게 녹아있다.
“어머니, 전쟁을 왜 해야 하나요?”라는 소년의 물음에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이다.
이우근 학도병은 결국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편지 역시 후일 시신을 수습하던 생존 학도병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학도병의 눈을 통해 본 전쟁의 참상,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눈에 비친 전쟁의 끔찍함은 <포화속으로>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이상은 '다음영화'에서 퍼온 글입니다)
어떤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된다
전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군인이 아니고 여자들이다
이런 의용군들이 있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총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무조건 싸우러 나갔다
이 바위(?)처럼 생긴것은 학도의용군을 표시해논것 용사탑뒤에 있다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7년 영화(그때 현장에 있었다) (0) | 2018.02.08 |
---|---|
신과 함께 (0) | 2018.01.08 |
범죄도시 (0) | 2017.11.07 |
루터를 보고 (0) | 2017.11.07 |
남한산성을 보고 울었습니다 (0) | 2017.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