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을 보고
장준환Jang Joon Hwan감독 김윤석박 처장 역
24일밤 추운데도 모임을 갖고 보려던 영화 '1987'을 봤다 춥고 저녁때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미보아 관객은 반정도 찼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이 말이 한창 유행(?)한적이 있었다 바로 박종철사건이 났을 때 대공수사의 어느분이 했던말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는다 젊은 검사는 이것을 보고 분명 고문일것이라 하여 화장시신을 못하게하고 부검에 들어간다
영화는 실화이다
1987의 배경은 6월 항쟁과 박종철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뒤에 연세대생 이한열 학생도 죽는다 이것이 불타올라 6월 항쟁이 나온다
짧게 스토리를 말한다면 대학생 한명이 죽었는데 심상치가 않아 부검을 해보니 역시나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서 검사, 사회부기자, 경찰 등....이 고군분투 하는 것을 재미나게 보여준다
실화이기 때문에 더하고 뺄것도 없다 더구나 고문받다 죽고 학교문 앞에서 최류탄을 맞고
세상은 언제나 용기 있는 아니면 뱃짱좋은 사람들이 있어 사건이 풀리기도 한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에 저렇게 뱃짱좋은 당직검사가 사건을 파헤치는데 누군 그가 정의감보다 언제나 민주주의 투사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박처장(김윤석)이 미워서 그랫다는 말도 한다 암튼 허세를 부렸던 어쨋튼 사건은 진실로 들어나고 경찰병원에서 하면 잘못 될까봐 한양대병원으로 옮긴것은 지혜다
중앙대 용산병원의 오연상 내과의사를 불렀지만 이미 숨졌다 오씨를 동아일보 기자에게 상황을 말한다 고문에 의한 질직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당시 서울대 인문대학 언어학과 3학년 재학중 1987년 1월 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감
관악구 서울대 쪽으로 박종철거리를 만든다고 한다
아는 두 얼굴이 보이죠?
부검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황적준 박사, 한양대의 박동호 교수다
박종철 고문과 은페조작 사건은 1987년 5월 18일 폭로되었다 그것이 6월 10일 민주화 항쟁이 되었다
4·13 호헌 조치[1]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이후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
사족
6월 항쟁 때 나는 현장에 있었다
내가 대학생으로 있었던것이 아니고 부산에서 근무할 때이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00교육을 다닐때였는데 하도 오래되서 잊고 있다 영화를 보는데 내가 "그때 바로 저 현장에 있었지!" 하고 나도 모르게 뇌까렸다 부산에서도 더운 6월에 대학생들이 줄을 맞춰 구호를 외치며 저항했는데 난 일주일에 2~3번 남포동이든가 광복동인가 회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가는 도중 최류탄을 맞았다 그때는 일반 시민들도 재수없으면 맞고 난 그때 한창 젊은 나이라 학생들 대열에 분명 안있었건만 하도 최류탄을 쏴대서 피하지 못하고 맞았는데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쓰라렸다
고함을 지르며 근처의 어느 의원으로 뛰어들어가니 사람들이 씼겨주고 잠시 쉬어가라 한다
그때는 나 말고도 시민들도 곧잘 맞아 골목길로 피하고 가정집으로 뛰어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