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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이미

최영미 시인의 글


이미(최영미)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

이미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이미 가진 자들은 아프지 않다.

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미 뜨거운 것들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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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새롭게  나온 최영미 시인의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에 나오는 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많드는것 같아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이 시' 맘에 와 코끝이 찡하며
 뭔가 "콰~앙"하고 내려치는 것을

'시'를 보고도 항상 그저 담담하게 느껴졌다 아주 대단한 '시'가 아니면 별로로 여겨저 누가 '시낭송'한다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사실 난 '시'를 잘 모른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 보게 만든다. 

내가 시에 대해 아는것이 없으니 뭐라 말하진 못하지만 이미 자기가 가진것에 대한 것들을 적은것 같다
이미 뜨거워졌으니 말은 없고, 이미 가졌으니 아프지 않고, 이미 슬펐던 사람은 더 이상 울지 않고

 '이미 아픈 몸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올바른 해석이 될까?
 아픈 몸은 저지른 안좋은 과거를 말하는걸까? 아님 한때의 실수(큰 실수든 작은 실수든)를 말하는 걸까?
아프다는것은 육체의 아픔도 있지만 영혼의 아픔도 있다.
아주 큰 영혼의 상처는 그야말로 오랜동안 트라우마로 남아져 그것이 육체로까지 간다.

육체가 너무 아퍼도 영혼까지 병들고, 반대로 영혼의 상처가 커도 육체로 까지 번진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하나의 유기체이다. 다른 동,식물과 달리 사고하는 능력을 지닌 유일무이, 아직까진 수많은 드넓은 우주에  지구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사고하는 존재이다.

동생이 오랫동안 아펐다 내집에 왔을때는 병원에서도 그랬지만 암환자도 아니면서 머리는 박박깍고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어린사람도 아니고 중, 고생 아들을 가진 애엄마가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심하게 말하면 사람같지도 않아보였다.  옆구리에 소변줄차고 소변주머니는 침대 가까히 있고 일반인들도 볼수 있지만 보여주기 싫어 다른쪽으로 매달아 놨다.

나야 매일 그런 지저분한 것을 보니 그저 그렇지만 이런것을 보기 역겨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방문중에 가만히 사람들을 슬쩍 살펴보는데 얼굴 보면 안다.
세월이 몇년씩 흘러가니 어느날 동생이 하는말이 "이젠 부끄럽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