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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 읽기] 우리는 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17회

굿뉴스2019-11-26 ㅣ No.566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읽기] 우리는 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유비 개념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 편집자 해설.) 노자의 「도덕경」 첫 구절은 자연의 심오한 도를 표현하는 데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웅변으로 말해 준다. 하물며 이 자연을 창조한 절대자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일이랴.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는 이 문제를 자각한 사상가들이 지속해서 나타났다. 그들은 ‘부정 신학’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곧 “신은 …이다.”처럼 긍정적인 문장이 아니라 “신은 …이 아니다.”처럼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 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에 계승되어 성 아우구스티노, 위 디오니시오, 에크하르트, 독일 신비주의를 거쳐 스페인의 위대한 신비가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영향을 주었다. ‘부정 신학’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표현이 신을 온전하게 규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주었다.

 

후대 학자들은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런 언어의 한계를 넘어 끊임없이 신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그 흔적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초’(Super)라는 접두어를 사용하여 ‘초본질’, ‘초선성’, ‘초지혜’ 등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탁월의 길’이다. 그러나 성경 대부분은 이런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와 같은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간 언어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식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이해해야 할까? 이에 대한 반성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 이하 STh)에서도 강조하는 ‘유비’라는 개념에 농축되어 있다.

 

 유비 개념의 기원


 ‘유비’의 어원인 그리스어 ‘아날로기아’(analogia)는 피타고라스학파에서 개발한 수학 개념이다. 이 개념을 플라톤이 받아들여 우주의 구성 원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비가 학문적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에게서 후대에 발전될 다양한 형태의 근원이 발견된다.

 

그는 「범주론」의 첫머리에서 하나의 명칭이 여러 대상에 대해 한 가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동명 동의어, 일의성),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동명 이의어, 다의성), 파생어와 같은 명칭의 다양한 사용 방식을 설명한다.

 

예컨대 ‘동물’이란 단어가 인간, 개, 고양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에는 일의성(동명 동의어)이 되고, ‘배’란 명칭이 먹는 배, 타고 다니는 배, 신체의 일부 등의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다의성(동명 이의어)이다.

 

이러한 다의성은 논증에서 쓰일 때 많은 오류를 만들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데, 때로 사람들은 일반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 경우 의도적으로 다의성을 사용한다.

 

또한 「형이상학」에서 ‘존재’라는 명칭이 일의적이거나 다의적으로 다양한 사물들에 쓰이지 않고, “하나와 관련된 진술”을 통해서 쓰인다고 주장한다. 이 진술의 특징은 한 단어가 어떤 대상에게는 ‘선차적으로’ 쓰이는데 다른 것들에게는 ‘후차적으로’ 기본 대상(제1 유비자)과의 관계 속에서만 쓰인다는 것이다. 곧 ‘건강’이라는 단어는 선차적으로 동물이나 사람에게 쓰이지만, 동물이 건강하다는 표징인 혈색이나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원인이 되는 음식이나 음료 등에도 후차적으로 쓰인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서 교환 정의와 분배 정의를 설명할 때나 동물들의 관계를 설명할 때 ‘비례적 유비’(a:b≒c:d)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는 이 비례적 유비만을 ‘아날로기아’라고 불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점점 확장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서방 세계에 소개한 아랍의 철학자들(아비첸나, 알가젤리, 아베로에스 등)에 의해 서방의 스콜라 철학자들에게는 그 의미가 매우 넓어진 유비 개념이 전수되었다.

 

 유비 개념의 발전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언어가 창조주의 절대성을 표현하기에는 부적합한 면을 지닌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1215년에 열린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명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비유사성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그 유사성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신앙, 도덕에 관한 선언, 규정, 신경 편람」[DS] 806항). 그렇지만 이런 결정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개별 학자들이 스스로 그 길을 열어 가야 했다.

 

아퀴나스는 이 문제를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신은 인간을 피조물로 인식할 수 있어서(STh I,12) 명칭을 부과할 수 있지만, 피조물은 신을 단지 불완전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알려진 피조물의 완전성으로부터 취해진 모든 명칭은 피할 수 없이 결함을 지닌다(STh I,13,1). 이 결함을 극복하고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확장된 유비 개념, 곧 하나와 관련된 진술, 비례적 유비, 의도적인 다의성을 모두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유비 개념을 사용했다.

 

아퀴나스는 유비를 일의성과 다의성을 배제함으로써 규정한다. 곧 유비적 진술에서는 한 명칭이 일의성에서처럼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쓰이거나, 순수다의성에서처럼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토마스는 더 나아가 유비를 긍정적으로 어떤 유일한 것에 대해 맺고 있는 “선차적 또는 후차적 관계들”이라고 규정한다(STh I,13,5). 이를테면 우리가 신과 피조물들을 ‘존재’라고 명명할 때에 우리는 존재를 먼저신에게, 곧 스스로 현존하는 자존적인 존재로서의 신에게 속하는 것으로 돌린다. 그 다음에 후차적으로 신으로부터 존재를 부여받은 피조물에 속하는 것으로 말한다.

 

 신에 대한 올바른 진술을 위한 유비 개념


 피조물들이 신을 불완전하게 묘사하고,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명칭은 제한된 관점을 지니기 때문에, 신과 피조물에 공통으로 부여된 명칭들은 두 대상에게 일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일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언어를 일의적으로 신에게 쓰다 보면, 그리스 · 로마 신화처럼 ‘의인적인 방식’으로 신을 이해하거나, 신과 피조물의 차이를 망각하는 ‘범신론’에 빠짐으로써 신의 초월성을 위협하게 된다.

 

또한 그 명칭들이 순전히 다의적으로 사용된다면, 피조물로부터는 신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할 수도 없고 논증할 수도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신에 대해 어떠한 진술도 할 수 없게 되어 ‘불가지론’(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인식론)에 빠지게 될 것이고 모든 종교적인 진술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퀴나스는 제3의 길로서 유비적인 방식이야말로 인간이 신에 대해 올바로 진술할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명칭들이 유비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하느님에 대해 진술할 때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필요조건이지만, 올바른 진술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며, 그 최종적인 완성점은 더욱 아니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계속하여 이 유비라는 진술 방식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끊임없이 부적합한 종류들을 배제하면서 더 적합한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STh I,13,6-10).

 

아퀴나스의 깊은 통찰에 감명받은 많은 학자는 아퀴나스가 여러 저서에서 산발적으로 언급했던 내용을 모아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라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아퀴나스는 유비 개념에 대한 저서를 쓰거나 특정한 체계화를 위해 노력한 적이 없지만, 후대 학자들이 형이상학적 근거 정립을 위해 그가 즐겨 사용했던 분유(participatio) 이론을 발전시켜 학설로 정립한 것이다.

 

이미 중세 철학 융성기에 던스 스코터스(Duns Scotus)와 같은 학자가 존재의 유비성에 반대하여 존재의 일의성을 주장한 바 있지만, 존재의 유비 이론은 아퀴나스 사상을 추종하는 많은 학자에게 중요한 학문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유비란 그 근원적인 의미에서 바라볼 때, 어떤 것을 인식하거나 형이상학적 근거를 찾는 데 사용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라기보다 한 단어의 올바른 사용을 강조하는 언어 철학적 개념이다.

 

유비 개념은 바로 신에 대해 진술하고 학문적인 토론을 할 때, 인간의 언어가 지닌 근본적인 제약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다. 우리는 아퀴나스가 제시한 유비 개념을 사용한 방식을 통해 인간 언어의 제약성을 자각하면서도 그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수정하여 신에 대한 올바른 진술 가능성을 새롭게 찾으려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 박승찬 엘리야 - 가톨릭대학교 철학 전공 교수. 김수환추기경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한다. 라틴어 중세 철학 원전에 담긴 보화를 번역과 연구를 통해 적극 소개하고, 다양한 강연과 방송을 통해 그리스도교 문화의 소중함을 널리 알린다. 한국중세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박승찬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