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2021-03-21 [제3236호, 12면]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6) 영성, 신앙의 색깔
영성, 신앙 살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내면적 의지이며 힘
하느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이웃·세상과 관계 맺는 일 / 삶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고 수행하는 방식
영성은 신앙 표현되는 색깔 생태 영성, 평신도 영성 등 각자 삶의 자리에서 다양해
신앙 고백하는 내면 성찰하며 실천적으로 신앙 살아낼 역량 키워내는 일이 영성수련
■ ‘영성’이란 말에 관한 오해와 편견
솔직히 고백하면, 신학생 시절 ‘영적 독서’라는 용어에 조금 비판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영적인 것은 거룩하고 초월적인 것과 관련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신학생의 어떤 행위들에 세속과 구별되는 특권의식을 심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영적 독서란 읽는 대상의 거룩함과 읽는 방식의 거룩함 그 어디에 무게중심이 있는 걸까? 성경을 제외한 다른 책들은 그저 읽는 방식의 거룩함에서 영적 특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감히 하곤 했다. 그래서 영적 독서 시간에 몰래 본 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영성의 수덕적인 측면과 신비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관습과 행위에 충실하고 외형적으로 경건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에게, 성체 앞에서 오랜 묵상과 관상을 통해 특별한 내면적 체험을 하는 수도자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영성적이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영성이라는 말이 외적 경건함과 내적 특수함에만 좁혀서 적용되는 경향이 많다.
■ 영성에 관한 종교사회학적 이해
영성적이라는 것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것, 친밀하고 내면적인 것, 경험적인 것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종교적이라는 말을 주로 공식적인 것, 외형적인 것, 제도적인 것과 관련시키는 것과는 대조된다.
현대인들에게 종교는 자주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 “종교의 시대에서 영성의 시대로.” 요즘 쉽게 듣는 말이다. 종교의 몇몇 부정적 현상들이 종교적이라는 것과 영성적이라는 것을 구별하게 한다. 하지만 종교(성)와 영성은 언제나 깊이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적이라는 것은 영성적이라는 것을 의미해야만 한다.
신앙생활, 종교생활, 영성생활. 통상적으로 서로 다른 뉘앙스로 우리는 이 말들을 사용한다. 종교생활은 성당에 가서 성사와 전례와 본당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 영성생활은 일상 안에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기도생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외형적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고, 내면의 신앙생활은 영성생활이라고 너무 쉽게 구별해버린다. 더욱이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종교생활로 좁혀서 이해한다.
이것은 신앙이 외적이고 규범적인 것, 즉 종교 관습과 규범을 지키는 것이고, 영성은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것이어서 개인적 차원에서 행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종교생활과 영성생활을 포함하는 것이다. 신앙, 종교, 영성. 구별은 해 볼 수 있지만, 진정한 맥락에서 그 셋은 하나일 것이다.
영성(spirituality)은 몸(body), 마음(정신, mind, spirit), 영혼(soul) 모두와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영성은 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오해했다. 현대적 이해 안에서 몸과 마음과 영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영성수련은 몸의 수련, 마음의 수련, 영의 수련 모두를 포함한다.
영성은 신앙이 수행되는 다양한 색깔과 모습이다. 생태 영성, 사제 영성, 수도자 영성, 평신도 영성 등 영성의 색깔은
다양하고 다채롭다.
■ 영성에 관한 신학적 이해
성서적 관점에서 보면, 영성은 하느님의 영에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며(1코린 2,14), 육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로마 8,13),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콜로 1,28)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佛性)이라는 말처럼, 그리스도교에서 영성이란 세례 받은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진 신앙의 속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학이 이성적인 이해를 추구한다면, 영성은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하느님을 이해하기보다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초월적 경험과 신비 체험과 같은, 특별한 체험을 자꾸만 영성과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다. 영성과 신비주의를 혼동한다. 환시와 환청을 통한 내면적이고 신비한 체험을 하는 신비가들이 영성가의 대명사로 흔히 지칭되고 있다. 하지만 신비주의는 영성의 한 형식일 뿐이다. 하느님 체험은 특별하고 특수한 형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 속에서 발생한다. “‘옆집’의 성인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이라는 표현은 영성적 체험, 즉 거룩한 체험은 꼭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어쩌면 일상의 영성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영성은 관계성을 의미한다. 영성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자기 자신과 이웃과 세상과 관계 맺는 일이다. 영성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영성은 하느님과 일치를 뜻한다. 일치해서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다. 전통 신학에선 이것을 성화(santification), 신성화(deification), 신화(神化, divinization)라고 불렀다. 일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관상적 체험을 통한 내면의 일치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내면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삶 안에서 생각과 행동과 태도의 일치를 통한 전인적 합일이다. 생각과 마음과 행동과 태도가 하느님과 예수님을 닮아 일치하는 것이 진정한 성화의 길이다.
■ 영성은 신앙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영성이란 삶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표현하고 실천하고 수행하는 방식이다. 신앙을 살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내면적 의지이며 힘이다. 신앙은 결국 예수를 생각하는 것, 따르는 것, 닮는 것, 재현하는 것, 예수와 일치하는 것, 예수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예수의 생각, 시선, 행동, 태도, 삶의 방식, 그 모두를 닮는 것이다. 영성이란 예수처럼 사는 것이며, 예수처럼 살게 하는 내면적 의지와 힘이다.
■ 영성은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된다
영성은 신앙이 수행(고백, 표현, 실천)되는 색깔과 모습이다. 당연히 다양한 색깔, 다양한 모습이 있다. 학문적 관점에서 역사 속의 영성의 스타일을 금욕적이고 수도자적 영성, 신비주의 영성,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영성, 예언자적이며 비판적 영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신앙이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처럼, 신앙의 특성인 영성 역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생태 영성, 사제 영성, 수도자 영성, 평신도 영성 등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영성의 색깔은 다양하고 다채롭다. 신앙을 살아내는 저마다의 모습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다양할 것이다.
자신의 신앙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신앙을 살아내고 있는지, 신앙을 고백하고 실천하는 자기 내면의 의지와 힘이 어떤지에 대해 성찰하며 신앙을 실천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이 영성수련이다.
정희완 신부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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