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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짓누르는 우리의 미신 /김대성

[세상읽기] 교육을 짓누르는 우리의 미신 /김대성

김대성 교육인 입력 2022. 04. 04. 00:06 댓글 0

 

 

 

미신이라는 용어가 대선 정국을 뒤흔들더니 이제는 청와대 이전을 둘러싸고 이웃나라까지 가세해 말이 많다. 요지는 국정 운영에 미신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미신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데도 그렇게 믿는 것으로, 어느 나라에나 생활 속에 일정 부분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따른 사회적 국가적 폐단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근래 와서 우리나라 교육을 짓누르는 하나의 미신이 사회 전반에 견고해지는 듯하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에 들어갔다. 새로운 정권에서 구현될 교육정책 중에서 국민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대입 정책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공약에서 공정한 대입제도 운용을 위해 정시모집을 확대하고 수능 성적의 비중을 늘려서 제도를 단순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정리하면 수능 성적의 비중을 늘려서 공정한 대입제도를 만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교과 담당 선생님들은 EBS 연계율에 더 촉각을 세우며 ‘수능 대박’을 꿈꾸는 기원제가 학교마다 더 화려하고 규모 있는 연례행사로 펼쳐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러한 행사가 서로 응원하며 1년을 마무리하는 따뜻한 학교 공동체의 의미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수능 성적이 대학에서 입학생을 선발하는데 공정한 잣대인가?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능이 어떤 시험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능의 정식 명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미국의 SAT를 모형으로 개발된 이 시험은 원래 대학 입학생 선발을 위한 판별 도구로서의 상대평가가 아니라 대학에 들어와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 보유 여부를 알아보는 절대평가 시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엔 특정 교과의 내용을 외워서 답을 맞히는 형태가 아니라 교과통합적이며 높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시험이 지금의 교과별 학력을 측정하는 학력평가로 변질한 지 오래됐으며, 이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도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능력 측정으로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라는 앞뒤가 모순되는 성격과 목적을 버젓이 맨 앞에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험을 설계한 박도순 박사가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수능 성적이 공정하다고 믿는 것은 미신이라고 단언한다. 학생이 취득한 점수는 그 학생의 능력을 구분하는 절대 척도가 될 수 없으며 더욱이 불과 몇 점의 점수 차이로 합격·불합격을 판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원로 교육학자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진로교육이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부산시교육청에서는 부산대학지원센터를 접고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로 개편해 문을 연 지 11년이 됐다. 이는 부산교육연구정보원(현 부산미래교육원)의 진로상담부와 부산대학지원센터를 통합 설계해 설립됐다. 그 목적은 수능 성적과 배치표에 따른 맹목적인 진학지도를 지양하고,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소질 등 장기적인 진로계획을 바탕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부산의 많은 진로·진학 선생님들의 노력이 집결되는 장소가 됐으며 이후 이곳은 가까운 울산 경남을 비롯한 타 시도교육청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곳이 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교육을 고민해 본 사람은 안다. 자세히 학생들의 얼굴을 살펴본 사람은 안다. 교육이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개별적 잠재능력을 일깨워서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힘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일이다.

 

이때 학생 한명 한명의 얼굴을 보고 그 표정에서 가능성을 읽기도 한다. 결코, 성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이지 크리스토둘루가 말한 ‘일곱 가지 교육 미신(Seven Myths About Education)’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보다도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적이 공정하다는 미신부터 떨쳐내야 한다.

 

매해 연말에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데 언젠가 ‘전미개오(轉迷開悟)’가 1위를 한 적이 있다. 이는 미혹에서 벗어나 깨닫는 마음에 이른다는 불교용어이기는 하나 새 정부가 들어서는 이 시점에서 다시 소환돼야 할 정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