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권력자가 고립되지 않으려면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지위가 물리적 공간의 특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수천 년 동안 문화는 사회적 지위를 전달하기 위해 신발에서 도시 계획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공간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마야족은 권력과 부를 더 높은 고지대로 연관시켰고, 지도자와 엘리트를 언덕 꼭대기에 배치했다.
오늘날에도 사회적 지위와 공간 사이의 연결 고리는 우리의 생각과 환경에 깊게 파고든다. 영화 속 왕의 자리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가장 높은 곳에, CEO의 사무실도 대체로 빌딩 최고층에 있다. 사회적 지위와 공간이 은유적으로 연계되다 보니 우리는 일상적 대화에서도 상급자를 아래가 아닌 ‘윗선’ ‘윗분’이라고 칭한다.
근접학(proxemics)은 개인이 활용하는 공간의 분리 정도와 그것이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중 흥미로운 주제는 물리적 공간 배열과 설정이 사람 간 관계에서 권력과 통제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지위와 권력의 가장 명백한 표현 중 하나는 사무실 배치와 관련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공간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타인의 접근성이 제한되어 여러 겹의 문지기(비서)를 통하게 한다. 하지만 권력자의 공간 독점성이 커질수록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권력자의 공간적 단절은 리더 자신이 원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측근들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고 행하는 경우가 많다. 현명한 권력자일수록 공간의 ‘아래’로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한 리더가 되었다.
경영혁신의 대가 톰 피터스는 저서 『초우량기업의 조건』에서 성공한 기업의 비밀은 전략보다 실행에 있다고 했다. 최고경영자가 ‘아래’로 내려와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때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회의하고 보고받는 대신 현장을 돌아다니며 점검하는 ‘MBWA(Management By Wondering Around)’를 강조했다.
최고 성과를 낸 기업들의 경쟁력은 고객 접점에서 일하는 점원이나 창고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GE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잭 웰치 회장은 ‘중성자탄’ 별명처럼 냉혹한 결단력을 발휘하면서도 일선 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늘 현장을 파고들었다.
조선시대에 세종과 함께 나라를 가장 발전시킨 왕으로 꼽히는 정조는 끊임없이 궁 밖을 나와 백성을 직접 살피고자 애쓴 군주이다. 여러 차례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고 전해졌지만 100회 이상 도성 밖 행차를 통해 일반 백성의 민원을 직접 듣는 기회를 만들었다. 신분적 차별을 당하지 않고 백성 누구든 억울한 일은 무엇이나 왕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만천(萬川)에 비친 밝은 달”이 되어 모든 백성에게 직접 닿는 왕정을 꿈꾸었다.
권력은 그것이 발휘되는 장소 즉 공간의 상징성을 통해 그 정체성과 성격을 드러낸다. 특정 장소는 원래의 기능을 넘어 형태와 사용 방식에 따라 시간적, 공간적 상징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 성수동 지역 공장들은 열악한 생산현장과 오염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실험적 문화공간의 허브가 되어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대통령 집무실 같은 ‘권력의 장소’는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다른 장소보다 더 큰 상징성이 부여된다. 지금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된 청와대 자리는 고려 숙종 때 궁궐이 지어진 이래 900여 년 동안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새로 출범할 정부는 청와대가 지닌 권력 공간의 폐쇄적 상징성을 바꾸고자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요한 이슈는 용산(국방부)이라는 특정 공간을 어떻게 새로운 권력 장소로 상징화하고 이에 상응하는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이다. 일부 여론은 무리한 일정과 조급함을 비판하고 건축적 표현의 준비 부족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비판이 갖는 함정도 경계해야 한다.
세계 역사를 보면 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들의 파워를 ‘기념비적인 건물’ 축조에 사용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한 사례가 많다. 이전할 부지 주변에는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등 이미 ‘기념비적 상징물’이 충분하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대통령실이라는 최고권력 장소를 지리적으로 변경한 후 권력자와 시민의 유대관계가 확립되는 상징적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권력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간을 수단으로 삼았던 덫에서 빠져나와야 가능한 일이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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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고 권력자의 인성과 철학이 문제 일겁니다. 좋은 글에 감사.
어느분이 윗글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누구도 거기에 공감해 냉큼 집어왔다(블,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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