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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악마의 바이올린을 보다

 

2월 20일 토욜 음악감상회를 갔다 그전에도 갔었던 신사동의 '뮤지크바움'  여긴 커피마시는 자리는 적어도 감상실은 꽤 크다 의자도 푹신하고 증간중간 작은테이불이 있어 물건 올려놓기도 좋다 감상실은 대개는 커피나 음료 같은것 못갖고 들어가는데 여긴 갖고 들어간다 먹는 장소가 좁아서 그렇다

오늘은 '파가니니'하고 '비발디'를 감상하기로 했다

 

 

 


 

 

 

 

 

감상 들어가기 전 군것질 거리를 사갖고와 회원들이 즐긴다

파가니니의 다룬 영화를 미리봄 

 

 

 

 

남자 두 분중 한분은 방장이고 한분은 아주 클래식의 유명한 분이 끝나고 약간의  해설을 함 방장분도 클래식의 대가임 실지 음악을 알지못하고 방장할 수는 없다 스케줄도 잡아야되고 해설해서 올려야되고 장소도 맞추고 ....그 외 할일이 많다

 

 

 

이날 예상보다 인원이 넘쳐 의자에 다 앉지 못하고 구석구석 작은의자를 놓아야 했다 올 사람들 미리

몇 명정도 올것이다 명단을 적지만 언제나 예상보다 안오는분들 있어 적었는데 이번에는 첨왔다며 친구따라

왔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가니니에 대하여

1782년 이태리 제노바 출생해 1840년 5월 27일 위대한 연주가이며 작곡가인 파파니니가 태여나고 죽은날이다 그는 시대에 뛰어넘는 기교적인 연주모습과 다른 생각, 문란한 여성편력이 끝내 오명을 떨치치 못하고 죽었다

19세기 전 유럽을 집단 히스테리로 일으킬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음악성을 가졌지만 그의 방만한 생활과 좋지않은 소문으로 여러가지 병을 앓으며 죽어갔다

파가니니는 당시의 관습과 권위를 무시하고 괴팍함과 자유분방함은 물론이고 빠짝마른 몸매에 치렁거리는 머리, 매부리코와 광대뼈도 그의 헛소문에 일조했다

 

 그가 죽는다는것을 들은 신부가 찾아가서 평소 듣고 싶어 하던 말을 꺼낸다

"도대체 당신의 바이올린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그토록 놀라운 선율을 내는 것이요?"

카파넬리 사제는 빨리 악마가 그를 점령 하기전에  한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그런말을 한 것이다

한발씩 다가오는 죽음의 고통에 이런말은 정말  너무 야박한 말이 아닐련지?

심판은 하느님이 한다 물론 우리는 평소의 삶이 정의롭고 바르게 살아야겠지만....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손짓만 한다 귀찮으니 나가달라는 표시사제도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마침내 울화가 머리끝까지 난 파가니니는  "그 속에는 악마가 숨어 있소"

" 속이 시원하냐? 이게 바로 너희(세상사람들)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드냐?"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왜 그는 그런 오해받을 만한 말을 죽어가는 마당에서 했을까? 그것도 사람들이 알아주고 믿어주는 사제에게

그런  소문이 근거없는 것이란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을텐데..

그것은 임종의 마지막 자리에서까지 뜬소문에 대한 추궁을 받는데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신들린듯한 연주와 독특한 용모도 가십거리였을 것이다 인간은 그저 평범해야지 뭔가 다르면 입방아에 오른다   뭔가를 잘하고 뛰어나면 가만두지 않는다 거기다 그의 삶의 이력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무수한 스캔들속에서 살았다 

잘난것을 못보는 인간들이 그를 악마의 바이올리스트, 사탄의 아들이라는 등...

 

저널리즘도 선정적으로 부추겼고 스탕달과  리스트도 이런 소문을 마치 사실인양 언급했다 하이네는 공연중에 그의 발에 사슬이 감겨있고 악마가 나타나 연주를 도왔다고 단언했다 

이런! 인간들 같으니라구!

 

시인의 눈에는 악마가 보였나 아님 질투에 사로잡혀 그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치, 말의 상처는 오래간다

종교권도 그를 괴롭혔다 예쁘게(?) 선하게 살지않은 까닥이다 

 

불운은 죽어서도 계속됬다 제네바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사후 4년이 지나 1844년에야 니스에서 제노바로 돌아갔다 교회측의 반대로 묘지에 있지 못하고 지하 납골당에 안치됐다 그가 이렇게 안식처를 찾지못하고 있다가 1876년 아들 아킬레의 간곡한 청원으로 교회묘지에 묻혔다  그것도 밤에 몰래했다  아들이 반백이 되고나서다

 

바이올린 두 줄로 연주하기도 하고,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 보나파트르'는  그것을 보고 한 줄 로도 할수있냐고 물어 한줄 로도 연주했단다  그녀는 기절했다 인간의 능력이라기엔 너무도 놀랍다   G현만으로 오케스트라를 방불게 했다  이것이 평생 그를 괴롭히는 괴소문의 시작이 되었다 한줄의 줄이 그가 옛동거하던 여자의  목졸라죽인 창자를 꼬아 만든 줄이란다

바이올린 활은 그가 켜는것이 아니고 사탄이란 주장도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손가락이 늘어나는 희귀한 병이 있어 바이올린을 잘 켰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제자를 안뒀다고, 타인들은 그런병이 없으니 그만큼 켜지를 못할것이다라는 믿지못할 소문도 있었다

 

제노바에서 출생한 '파가니니'는 어려서 제노바의 오페라극장 지휘자 세르베토와 산로렌초교회의 악장이던 G.코스타 등에게 사사하고 9세 때 첫 바이올린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13세 때 다시 A.롤라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기레티에게서는 작곡을 배우면서 그는 그 무렵부터 연주여행과 초인적인 기교를 발휘하기 위한 난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루카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이태리 각지를 돌며 화려한 연주생활에 들어간다 또한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등을 돌며 명성을 떨치고 청중들이 표가 비싸다고 아우성쳐도 아랑곳않고 비싸게 받아 그는 재산도 모았다 

 1801년 귀부인과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얼마지나 그는 건강이 나뻐지기 시작했으나 명예욕과 활동력은 더 타올라 1823년에 빈을 방문해 파가니니 선풍을 일으켰다 이 선풍은 다시 프라하와 베를린을 휩쓸고 1831년에는 파리에 이어서 런던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 미쳤습니다. 이 여행에서 파가니니는 엄청난 돈과 연주사상 공전의 명성을 얻은 후 1832년 제노바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의 연주법을 물려주지 않았다 제자도 단한사람 '시보리'뿐이다 그래서 그의 연주법은 현재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단다 그래도 낭만파음악에 준 영향은 크다  그런 와중에도 밀라노에서 한시즌에 36회나 연주회를 열고 여가수 '안토니오 비안키'와 열렬하게사랑을 하여 아들이 태여났으나 2년후 헤어졌다 이랬으니 교회에서 그에게 조종을 멈추게 하고 교회묘지에 얼른 묻히게 하지 않은것이다

 

그는 4옥타브에 걸치는 넓은 음역과 각종의 중음(), 플라지올레토, 스타카토, 스피카토, 살타토 등의 기교를 극도로 구사하여 화려한 곡예적인 연주법를 만들었다 무르익어 가고 있던 당시의 낭만파 음악의 일대 특징인 비루투오소()인 연주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기많고 돈도 많았으니 당연히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여자들도 많았을것이다 여성팬들은 그의 독특하고도 화려한 기교가 넘치는 연주를 보고  까무라쳤다고도 한다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개개인이 알아서 하겠죠? 암튼 그는 대단한 연주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멈추는 순간 파가니니는 연주를 시작한다"

(베를린 공연 직후 한 신문에 실린 가사 중)

 

 Paganini - Caprice No.24 in A Minor

 Paganini - Sonata Op.3 n.6 for violin and guitar

바이롤린 협주곡 1번, 2번 등이 유명

 

 

Tedi Papavrami - Paganini, Violin Concerto No.2 in B minor, Op.7 ‘La Campanella'

 

 

 

 

이 영화는 연주가 많아 실제 연주자인 '데이비드 가렛'이 연주했다 그는 잘생긴 외모로 영화에서 한몫한다

실제 파가니니는 잘생기지 않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