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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조국근대회의 언덕에서

펌글입니다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지 않나해서 저자에게 허락받고 올려봅니다 각자 개인적으로 사고는 다를수 있다고 생각됩니다(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신임기자 강00씨의 글)


조국 근대화의 언덕에서






대한민국 경제학 박사 1호 타이틀의 백영훈씨가 쓴 책이다. 필자가 다닌 대학교에서 경제학 강의를 하던 교수였는데 강의 시간이 안 맞아 수강신청은 못했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의 개벌연대 히든 스토리를 상세히 밝힌 책이다. 국비장학생으로 남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갔는데 혼자 서독을 택했다. 그 덕분에 20대의 나이에 서독 전문가가 되어 혁명정부 대통령의 통역 및 자문 역할을 맡았다. 이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당시 미국은 혁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그나마 있던 원조마저 끊었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대한민국과는 교류 자체를 안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독이라는 나라가 최초로 원조를 해주고 숨통을 터줬다. 백 박사가 없었으면 이루기 힘든 일이었다.
 
백 박사는 서독 유학을 갈 때 단돈 15불을 들고 쾰른까지 갔다. 그 당시만 해도 독일 가는데 직항 노선이 없어 여기저기에서 환승하다 보니 45일은 걸렸다는 것이다. 비행기 기내식을 돈 받는 줄 알고 매번 거부했다가 너무 배가 고파 홍콩에서 1불 어치 바나나로 연명하며 독일까지 날아갔단다. 그 이후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가난은 괴로운 일이었다고 한다.
 
백 박사가 돌아오고 나서 한국의 실정은 그야말로 잿더미였다.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의 인도 대표 메논(Menon) 이라는 사람이 1955년 특별조사단 단장으로 와서 한국을 보고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라는 말을 했고 당시 런던 타임스의 사이먼즈라는 기자가 이것을 신문에 헤드라인 기사로 썼다고 한다.
 
백 박사의 주선으로 원조 자금을 확보하고 담보 조로 38,000명의 광부와 간호원들을 파견했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독 방문 초청을 받았는데 전용기가 없던 시절이라 서독 정부에 구걸하다 시피 해서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얻어 타고 서독에 갔었다고 한다. 광부들이 있는 탄광에 가서 연설하다가 통곡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태영호 전 런던 주재 북한 공사가 덴마크에서 치즈를 무상 원조 받았는데 화물선 확보할 돈이 없어 북한까지 실어 보내달라고 한 것이나 비슷하다.   
 
 
서독 정부의 도움은 단순한 원조 외에도 일본과 수교해야 한다는 것, 철강 공장을 세워야 하고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된다는 조언도 있다. 나중에 일본에도 경제 자문을 받으러 갔었는데 소양강 댐을 만들어 치수 관리를 해서 한강 변 수해를 막고 청평댐을 만들어 서울시민을 위한 상수도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반도체가 우리 실정에 잘 맞는다는 것도 일본 전문가들이 해준 조언이라는 것이다
 
1960년 말의 우리 경제 사정을 보면 1인당 GNP가 단돈 87 불로 아프리카의 가나와 비슷했다고 한다. 외환보유고는 2,300만 불에 불과했다고 한다. 수출은 3,300만 불 수입은 그 열배가 넘는 344백만 불에 달했다고 한다. 모자라는 돈은 232백만 불 원조자금으로 연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우리 경제가 1964년 수출 1억 불, 1971년에 수출 10억 불을 달성했다. 이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경제가 가난을 벗고 오늘날 선진국으로 올라선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난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 그러나 가난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고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난에 찌들게 되면 삶의 희망, 삶의 빛이 점점 사그라지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썼다. 백날 얘기해봐야 못 알아듣는 자녀들에게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가난에서 벗어나서 이만큼 성장했는지 증언하는 책이다.  

시니어 리포터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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