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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자원봉사에서의 이모저모 6


조선닷컴     (  2010.01.19 2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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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의사들은 돌봄이나 위로의 말을 하기 싫어한다
아니,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지금에야 환자가 사람으로 보인다."

   



최상묵 NON TROPPO]-<16>: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덴틴발행인/2013.12.02 09:59:21 그림 가져옴




치료는 환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최상묵씨의 말이다 글과 그림이 좋아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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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예술을 찾아서 』라는 책, 대학생들이 거의 읽는 책이다 특히 의대 약대생들은 필히 읽어야 한다

이책을 읽고 감명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없을 것이다 굉장히 진솔하게 쓰여졌다

 저자는 '버나드 라운' 박사이다 이책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저자가 말하는 치료의 핵심은 최첨단 의학 기술과 현대적인 의료제도가 아니다

환자와 진심으로 대화하고 용기를 주는것 그리고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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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치과의사로서도 글로도 유명한 최상묵씨의 에세이를 중간부터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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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요즘 의사들은 마냥 치료만을 고집하면서돌봄이나 위로의 말을 하기 싫어한다. 아니 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치료행위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이다. 컴퓨터 화면만 주시하면서 일방적인 지시사항으로 진료는 끝이 난다.


특히 유명하다는 의사일수록 정답게 눈 한번 마주칠 시간이 더욱 없다. 큰 종합병원에 가 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첨단의료기기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밖에 없다. 환자마저도 사람취급이 아니라 그냥 숫자 개념에 불과하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오로지 첨단기계와 나타난 수치에 의한 까칠한 분석자료뿐이다. 의사와 따뜻한 대화 한번 해 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현대의학은 치료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돌보고, 위로하는" 일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의학은 보고, 만지고,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것만을 강조하고 내면적으로 느끼고 직관할 수 있는 주관적인 개념은 비과학적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혈압이나 당뇨에서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수치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할 뿐, 그 수치가 높아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나 심리적 요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배경은 "이야기"로 풀어가야 하는데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경황이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위대한 기술과 그 효율성에 도취되어 인체를 마치 분해할 수 있는 기계나 부품으로 생각하고, 잘 기름치고 닦고 관리하면 언제나 새롭고 반짝거리는 건강이 다가올 것으로 착각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의학은 과학과 느슨하게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의학은 과학만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넓은 의미의 인간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보다 윤리적이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이 될 때 비로소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학문이 될 것이다.

명의(名醫)는 되고 싶어하면서 양의(良醫) 되기를 거부하는 세태가 되어 가고 있다. 딱딱하고 냉혹한 의술에 예술적 유연함과 따뜻함이 함축되면 좋으련만. 의학은 자연 과학적 기술의 성취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예술적 또는 인문학적 보완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 대한 포괄적 지식과 이해가 깊고 인간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의사가 아쉽다.

의학 교육은 산에 오르는 등산에 비유될 수 있다. 의학은 산에 오를 때는 어떤 장비를 구비하고, 산에서 재난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자세하고 분명하게 교육하고 실습시킨다. 그러나 그 산을 오르내리면서 산에서 느껴야 하는 깊은 신비와 정취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필자도 대학에서 나름대로 명의(?)라고 거들먹거리면서 학생들에게 임상지도나 강의를 하면서 줄곧 방법론만을 가르쳤다.

치료해야 하는 이유가 '치아 사랑' 더 나아가 치아를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만 진정한 의술인 것을 미처 몰랐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지금에야 내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환자가 사람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사람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입속에 있는 질병만을 봐온, 입속에 갇힌 개구리였던 셈이었다. 환자의 입속에서 밖으로 탈출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제야 비로소 돌보고 위로해야 한다는 말의 뜻을 뼈저리게 느낀다.

치과의사들은 환자를 치료의자에 눕혀 놓고 입속에 칼을 들이대기 때문에 환자는 피동체이고, 의사 쪽이 속된 말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쪽은 환자이며 의사들이 칼날 끝에 매달려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질을 평가하거나 선택할 권리는 없어도 환자들이 의사를 심판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나친 특권의식이나 권위주의적 태도를 떨쳐버리고 환자들이 가장 믿을 수 있고 친근한 의사로서 환자들 앞으로 다가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의술은 계속 전진하고 있지만 인간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 그것이 곧 과학이며 의학이 될 수밖에 없다. 의술은 결코 신(神)이나 술(術)이 끼어들 수 없다. 영원히 사람과 사람의 행위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최상묵 서울대 명예교수·치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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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된 글이지만 여전히 현대사회에 더욱 울림을 주는  글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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