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지났는데 이제서
'조커'가 그런대로 괜찮다고해 봤는데 크게 감명은 못받고 다만 기억에 남는것은 조커가 자주 빨간옷을 입는다는것, 춤도 추고, 특히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춤을 춘다 그가 주로 웃음기 가득한 분장을 하고 다니는것도
미국 70년대의 뉴욕의 도시인가 하는 곳이지만 약자, 빈자들이 사는 곳의 어두운데서 사는 어떤 사람의
삶을 그리고 있다.
분장하고 집에 가는데 잘차려 입은 사람들 셋이 여성을 희롱하는 장면을보고 웃음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고 아서를 괴롭히기 시작, 미국인들은 대체로 무기를 지니고 있어 바로 품에서 총을 꺼내 죽이고 달아난다 이것이 부자들을 향한 기폭제가 되어 전부 광대마스크를 쓰고 폭동이 시작된다
한편으론 자신을 괴롧힌 사람들을 죽인 아서는 해방감을 느끼는데, 그런 정도면 정신병자 맞다
더러운도시 고담에서 일어나는 어떤 한사람을 주목, 바로 '아서 풀렉'인데 그는 코메디언이 되고싶어한다 그래서 그런가 연극배우처럼 액션이 강하다 일반배우들은 그닥 몸짓이 강하게 안해도 된다. 한정된 공간의 몸짓은 대체로 강렬하다 영화에서 내내 보이는것은 아세 풀렉의 강한 몸짓과, 빨간 양복과, 우스운 분장, 그리고 춤이다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춤을 춘다 계단이 길게 있다는것은 어려운곳에 산다는 의미도 있다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집값은 싸다
얼마전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이름마져 부르기 싫은 영화인데 크게 재미는 없어도 울림이 강한 영화다. 삶의 빈부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반지하방에서 사는 가족과 그보다 더 지하에 살고있는 집과 상류층에 사는 사람들을 그렸다 현 시대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상류층 부부로 나오는 이선균씨가 하는말 '그들이 선을 넘는것이 싫다고' 한다 그 수준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처럼 광대복장을 하고 이벤트을 대행하고 병상의 어린이를 즐겁게 하는 아서 플랙이 있는데 그는 유난히 웃음을 못참는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보면 병이다 장례식에서 함부로 웃으면 안된다
그도 웃지 말아야 할 때 미치도록 웃는다 좀 과장되게 웃는데, 영화를 보는내내 그의 과장된 연기가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해 씁쓸하지만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나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됨을 알게된다.
그래도 망상장애를 앓는 어머니를 보살피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난 후부터 분노가 더욱 솟아오른다
까만색의 조커도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난 후 부터 분장을 필요없이 슬픈 피에로가 되서야 더 잘 웃는다
살인을 하고 매스컴에서 특필되는것으 보며 흡족해한다 상상속의 관심이 이제 현실로 됬지만 흡족해하는데 그렇다면 그도 제정신이 아닌 정신병자다.
우린 보통 '미국거지도 미제담배를 핀다'하고 우스게 소리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빈곤층이 없을리 만무
현대세계는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양극화는 벌어진다 한국은 그게 지금 한창 극성을 부린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 나는 소외받는 빈곤충인 백인들의 지지를 받아 됬다고 본다
사회적인 소외, 늙어가는것도 일종의 소외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갖지 않는다
신분계급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진자들의 갑질과 알게 모르게 윗글의 누구처럼 하는것을 보라
영화에서도 어머니가 망상장애를 앓고 있는데 결국 아들인 아서가 어머니의 정체를 알게되고 자기가 어렸을적부터 아동학대를 당했다는것을안다 그러므로 그는 단연코 악을 준비(?)한다 아니 그렇게 되어간다
글쎄! 삶이 가치있어야 죽음도 가치있게 ...어쩐지 잘 모르지만
이미 기득권을 가진자하고 빈곤층하고 싸움은 시작됬는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나라가 맨날 총질한다고 같이 싸울 생각은 안하고 우선 피난부터 가는 난민들, 그중에는 종교적 탄압이나 다른것도 있지만 그것도 기꺼히 감수해야 하는데 대부분 내가 볼 때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넘어오는것 같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
어느 나라나 양극화가 심해지면 폭동이 일어나고 인간은 더욱 피폐해지고 양심은 없어진다
영화본지 꽤 오래됬다 빨간양복과 삐에로의 분장과
"내 삶이 죽음보다 가취있기를..."이게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