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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20)공동합의적 여정에 관한 하나의 생각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20)공동합의적 여정에 관한 하나의 생각

공동합의성 실천, 정확한 현실 진단과 정직한 자기 성찰 요구

공동합의성 관한 주교시노드 변화와 쇄신 추구하는 교황의 새로운 상상과 실천의 정점
공동합의성, 유행·구호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며 존재 방식
삼위일체적 친교에 기원 두고 모든 구성원 의견 경청하면서 선교 사명 제대로 수행하려 해
실질적 대화의 장 형성하고 교회 현실 정확히 읽어내야
실재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현실에 대한 정직한 성찰 요청

발행일2021-10-17 [제3265호, 12면]

 

  프란치스코 교황과 공동합의성

 공동합의성에 관한 주교시노드의 여정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주교시노드의 과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재임 시기의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보편교회의 흐름과 방향은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교황 자신의 신앙적 지향과 태도가 교회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내내 교회의 변화와 쇄신에 온 힘을 기울였다. 교회의 성장과 관리와 유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선교하는 교회, 야전병원으로서 현장 교회를 중요시한다. 또한, 위계적 통치보다는 복음적 사목을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주의의 폐해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개선 노력, 로마 교황청의 재정적·구조적 개혁, 교회 내 여성의 역할에 관한 새로운 상상과 시도 등 전방위적 측면에서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론과 연설, 교황 문헌들을 통해 교회의 변화와 쇄신에 관한 새로운 상상을 제안하고 선포했다. 교황청 직무의 자리에 여성을 기용하기도 했고, 국제신학위원회에 여성 학자들을 포함시켜 다양성을 추구하기도 했다. 교황 자신의 직무와 권한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파격적으로 보일 만큼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시도들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 행위들을 통해 그 선언들을 실천하려 했다.

공동합의성에 관한 주교시노드는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상상과 실천의 정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있어서 교회에 관한 새로운 상상과 실천의 키워드는 ‘공동합의성’과 ‘사목적 회심’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교회는 그 본성상 공동합의적 교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합의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들의 회심, 특히 성직자들의 사목적 회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각하는 것 같다.


■ 공동합의적 여정의 지향과 태도

공동합의성에 관한 주교시노드를 위한 일종의 준비 문서(Preparatory Document)와 안내서(편람, Vademec um Document)가 발표되었다. 지역교회 차원에서 주교시노드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실천적인 제안을 담고 있다. 공동합의성은 일시적 유행의 행사나 선전적 구호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며 존재 방식이다. 선교와 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교회의 본질적 방식과 스타일이다. 교회의 본질적 존재 방식으로 돌아가는 공동합의성의 길만이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담보할 수 있다고 문헌은 선언하고 있다.

‘친교’와 ‘참여’와 ‘사명’은 공동합의성의 세 가지 차원이다. 공동합의성은 삼위일체적 친교에 그 기원을 두며, 교회의 본질이 친교임을 상기시킨다. 공동합의적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 경청하면서,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참여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공동합의성의 방식을 회복하려는 목적은 교회의 선교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교회는 언제나 선교와 복음화를 위해 존재한다. 공동합의성은 교회의 친교적 본질과 참여적 구조와 복음화 사명을 지향하는 것이다.

주교시노드 준비 문서에는 공동합의성에 대한 신학적 설명뿐만 아니라 공동합의적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한 구체적이고 섬세한 원칙과 제안이 담겨 있다. 공동합의적 과정은 신앙 감각의 주체인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참여하는 경청과 식별의 여정이다. 공동합의적 과정을 위해 충분한 대화의 시간과 겸손하게 듣고 용기 있게 발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자의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고, 회심과 변화에 열려있으며, 편견과 전형성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성직주의를 극복하며, 세대와 성별과 빈부와 능력과 교육의 차이를 넘어설 줄 아는 자세와 태도가 요청된다.

 

더 나아가, 어두운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주교시노드 준비 문서는 공동합의적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피해야 할 유혹과 함정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공동합의적 과정을 성령의 인도에 맡기지 않고 자신들이 주도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눈앞의 관심과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만 집중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고, 교회의 경계를 넘어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에도 긴 호흡과 넓은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공동합의적 과정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공동합의성은 언제나 태도와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공동합의적 과정에서 지역 주교 역할

가시적 가톨릭교회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은 주교직과 성체성사다. 현실 교회 안에서 교황의 모든 노력은 지역 주교들의 협조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황과 주교단의 일치가 실제 교회를 움직여가는 현실적 동력이다. 공동합의적 여정에는 모든 신자의 참여가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로 공동합의적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지역 주교들의 적극적 관심과 주도적 참여가 절실히 요청된다. 유럽과 남미에서는 지역 주교들의 참여가 활발하지만, 미국에서는 공동합의적 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주교시노드 준비 문서 역시 공동합의적 과정에서 주교의 주요한 역할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교구장 주교는 교구 신자들의 공동합의적 경험을 촉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주교는 자기 교구 안의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경청하는 데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대화의 장을 만들어 소집해서 신자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일이 주교의 역할이다.

지역 주교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공동합의적 여정을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력은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고 교회 역사가 마시모 파지올리(Massimo Faggioli)는 지적하고 있다.


■ 관념(idea)과 실재(reality)의 차이

국제신학위원회에서 발행한 문헌과 주교시노드 준비 문서에는 공동합의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설명이 담겨 있다. 더욱이 준비 문서에는 실천적인 태도와 방식에 대한 제안도 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언제나 문제는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이해가 아니라 실재와 현실의 맥락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공동합의성에 관한 신학적인 이해와 설명, 태도와 자세에 대한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요청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공동합의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교회 현실과 문화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진단과 분석이 더 필요하다. 통계화된 설문조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대화의 장이 확장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고, 교회 현실과 현상들의 이면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정직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한 현실 진단의 부재, 교회의 정직한 자기 성찰의 부재가 변화와 쇄신을 어렵게 한다. 구체적 변화와 쇄신을 위해서는 대안적 관념에 관한 신학적 이해와 새로운 상상과 더불어 실재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현실에 대한 정직한 성찰이 요청된다.



정희완 신부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