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향기
흥부보다 놀부가 좋다는 세상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수많은 채널로 무장한 TV에서 각종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어떤 드라마들은 종영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너무나 많아진 채널들은 이런 드라마들을 곳곳에서 틀어대면서 ‘보고 또 보고’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단순히 재탕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골자만 추려 담은 축약본도 있고, 전회를 연속 방송해서 한 번에 섭렵하도록 배려하는 친절함도 있다.
특히 아침이나 초저녁에 방영되는 일일 드라마에서 흔히 보게 되는 아주 일반적인 공식은, 첫째 ‘권선징악’의 틀을 작동시키고, 둘째 ‘인기가 감지되면 엿가락처럼 늘려라’였다. 최근 드라마들의 서사구조는 여전히 권선징악을 그 기저에 두고 있지만, 더 이상 단순히 악을 벌하고 선을 추구하는 모습만이 묘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멋진 악당들의 등장과 통쾌한 복수의 복선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고, 선과 악의 기준 또한 모호해지면서 악인에게 열광하는 일도 생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지는 몰라도 선과 악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1970년대 방영된 미국 드라마 ‘달라스’였다고 생각한다. 막장 드라마의 원조라고도 불리는 이 드라마는 텍사스를 배경으로 석유재벌 유잉 가(家)의 가족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탐욕과 음모로 점철되는 전개 과정에서 교활하고 악한 역할의 형 JR과 착한 역할의 동생 보비를 대비시키고 있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흥부보다 놀부가 좋은 세상’이라는 가치관의 변화를 느꼈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구조에서 착하기만 한 흥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고, 탐욕스럽게 부를 늘려가는 놀부가 멋진 능력자로 재평가되는 계기를 만든 드라마이기도 하다.
흥부보다 놀부가 좋다는 세상 변화의 흐름을 읽다 보니, 얼마 전 한 예능 퀴즈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신종 거짓말들이 생각난다. 사실 거짓말이라면 오래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처럼 전해지던 고전적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노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것” “장사꾼이 밑지고 팔았다는 것”, 그리고 “노인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들도 언제 적 이야기였는지, 지금은 기억 속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하나같이 성립도 안 된다.
노처녀라는 말은 아예 입에 올려서도 안 될 성차별적 단어가 되었고, 오히려 골드미스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미래와 희망이란 단어를 엮을 수 없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결혼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에게서는 코로나 사태와 더불어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장사에요”라는 말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건강한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즈음 ‘노인’의 정의도 어렵지만, 60세는 아직 젊은이여서 환갑은 여느 생일과 다를 바 없고, 70~80은 되어야 노인에 어울리는 나이대접을 받는다
.
그렇게 고전적 거짓말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랜데, 새 시대를 말해주듯 새롭게 등장한 거짓말들은 엉뚱함마저 준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리고 “굿 모닝”이 그런 거짓말들이라 했다. 듣는 사람들은 순간 웃어넘기면서도 기분이 영 석연치 않은 묘한 뒷맛을 곱씹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굿 모닝”이라니. 아주 오래전 독일 유학 시절에 들었던 노래가사가 문득 떠오른다. ‘유르겐 폰 데어 립페’라는 예명을 가진 엔터테이너의 노래였는데, 굳이 가사를 번역하자면 “좋은 아침! 사랑스러운 걱정거리들, 너희들도 모두 다 와있지?”라고 시작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제 남긴 모든 걱정거리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 “안녕! 나도 여기 있어!”라고 말하기에 ‘좋은 아침’은 영혼 없는 상투적 인사말로 자리매김한 것인가. 이런저런 근심 걱정들 하나둘쯤은 그냥 안고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기에, 아무리 편한 잠을 자고 일어나도 “좋은 아침!”이란 예의를 담은 참신함이 돋보이는 거짓말이 되는가 보다.
무능하고 가난한 착한 흥부보다 능력 있는 부자 놀부가 좋다는 세상에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이 없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진정한 ‘좋은 아침’도 만들어 줄까?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라는 시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행복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없으니, 매일 아침 사랑스러운 모든 걱정거리와 함께 시작되는 ‘좋은 아침’은 거짓이라기보다는 살아가야 할 또 하루의 시작에 대한 가벼운 다독거림이려니. 물리지도 않는.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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