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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구순잔치를 보며

우리나라도 기대수명이 길어졌다 그런데 여성은 골골거리며 10년을 남자보다 더 산다고 한다 (중앙일보 7,14) 그옛날에는 장수하는게 복이였다 현대는 오래살기는 하는데 온갖 질병으로 오래살어 걱정이다

두달전에 저의 큰고모가 구순잔치를 하셨다 이 고모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언제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가 첫째고   밑으로 여동생만 셋인데 그 첫째가 현재의 고모다 내가 어렸을적에 고모는 우리집에 자주왔다 얼굴은 둥글넙적하고 뚱뚱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텐데 살은 쪘다 우리집에 와서 자주 우는 소릴 잘하셨다 큰 소리로 말을 하는 스타일이고 제스쳐가 좀 강하다 어디서 갔고 왔는지 가끔은 밥도 가져오고 옷도 가져왔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몹씨 가난 할 때였다

 

고모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다

그 고모의 큰아들이 동네에 와서 나를 보면 "외삼춘 계시니?"  있다고 하면  그냥갔다  고모의 딸도 잠깐이나마 우리집에 있다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막내아들은 외갓댁에다 놓고 고모는 서울성모병원(당시는 명동에 있었음)의 세탁실에서 근무했다 어린내가 봐도 상당히 고생하는것 같다 그래도 나는 그 당시 왜 자식들을 이리저리 뿔뿔히 흩어져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집도 부모가 자주 싸워서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커가면서 서서히 알게 된 사실은 고모부가 언제 나갔는지는 몰라도 자식과 고모를 놔두고 다른여자와 살림을 차린것,  한번도 얼굴은 본적은 없다  다만 어렴풋이 들으니 고모밑으로 자식 3명이 더 호적에 올라있단다 그러니까 고모는 자기앞으로 자식이 6명이나 있는것, 정식이혼을 안했으니 남편이 몸만 빠져나가 살림차려 본처의 호적에 올라간 것이다

 

 자식들도 막내만빼고 다 서울서 살았다  내가 어렸을적의 명동은 명동성당 앞으로 근처에 허름한 집들이 좀 있었고 을지로 쪽도 허름한 창고같은 집들이 꽤나 있었다 공중화장실에 부엌도 없다 방인지 헛간인지 모를 공간에서 밥해먹고 자고 옆방에서 코고는 소리 다 들리고 화장실 가려면 정말 힘들었다 당시는 우리나라 왼만한 집도 다 화장실은 거의 동네에 한곳의 변소만 있는 실정이라 그건 괸찮으나 수도물 받으려면 줄줄히 서야하고 판자떼기 적당히 붙힌 것이니 삐걱삐걱 2층 3층 계단은 정말 위태위태 했

 

나도 몇번 갔었다 갈적마다 집이 달라졌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좀 넓은곳으로 갔다고해 보니 방안의 한구석에  또 하나의 한명 정도 누울 자그마한 공간이 있었다 고모는 그 공간을 아주 좋아했다 손님오면 옷벗으러 가기 딱 좋다고,   

 우리집에 오셔서 다리신경통이 나서 아프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하루죙일 세탁하랴 자식돌보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큰아들이 속 썩힌것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가 자주 그 오빠를 잡으로 다녔다

 

우리집에 와서 주로 하는 소리가 아프다는 말보다 큰아들 속 썩히는 소릴 더 많이했다 뭤때문에 속을 썩혔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


세월흘러 자식들 하나 둘 결혼했다  큰아들은 속썩힌것에 비해 신부감은 착하고 잘웃는다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넘친다 딸은 당시도 대학을 나왔다 이미 한번 결혼했던 사람하고 맺었는데 즉 이혼한 남자인데다 커다란 아들이 두명이나 있다 아마도 눈에 콩꺼풀이 덮였나보다 얼굴도 참 못생겼고 학벌도 변변찮다 

딸(고모의)은 서울의 고아원에 맡겼는데 공부를 잘해 장학금 받는 조건으로 교대를 나와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시골 외갓댁에 있던 막내도 중학교라도 다녀야 한다며 데리고 와서 학교를 보냈고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고모는 나이는 먹어가는데 자기 몸둥이 하나 둘 곳이 없다 딸은 딸이라 안되고 큰아들은 원래 건달이라 지네 살기도 바쁘다 별다른 직업이 없으니 맨날 방 한칸에 딸만 셋을 낳아 월세살기도 바쁘다  그래도 큰아들은 결혼하고 한동안은 정신차려 기쁘게 살았다 밤낮 벙글벙글 웃는 부인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국가에서  고모이름으로 임대아파트 당첨되 그리로 살게 됬다  남의집 월세 방 한칸에서 세명의 딸과 고모까지 살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우리집에 와서 몹씨 집자랑을 한다 13평이라고

지금 13평은 작지만 그땐 좀 컸다 얼마나 깨끗하고 살기 좋은지 모른다고 고모도 자랑한다

큰방은 고모와 세딸(손녀들)이 자고 작은방은 부부차지했고 또 다락도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다 다시 건달기가 살아나서 그나마 하던일도 때려치우고 화투, 경마 같은 도박을 하기시작했는데 차마 여기선 다 말못하지만 딸(손녀)들이 학을 뗀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도박에 미쳐 자금구하러 전전하기도   

부인이 식당다녀 학교공부 시켰다 큰딸은 역시 공부를 잘해 장학금 받으며 4년재 대학을 나왔다  현재 큰딸은 사십대 후반으로 미국서 살고있는데 미혼이다 아버지에게 데어서...절대 결혼하지 않는다고 

 

 딸(고모의)은 그런데로 사는데 여긴 사위가 속썩힌다 이 사위는  고모의 큰아들보다 더 건달이다 얼굴생김세도 건달이고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얼굴이 크고 무섭게 생겼다 몸집도 왼만한 씨름선수보다 크다 우리는 그를 '헐크'하고 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람 세상 무서운게 없다  전부인을 자주 때려서 이혼했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먼저 부인은 정말로 이혼하기를 백번 잘했다 지금  부인은 죽지못해 산다 이혼은 당연히 안되고 도망도 못간다 만약 도망갔다간 처갓집 식구들을 모조리 도륙내겠다고 한다 엄포가 아니고 실지로 이 건달은 하고도 남는다 평생을 일을 안하고 사는 참 재주도 좋은 남자이다  이 사춘언니가 교육자니 벌어서 시어머니 전처자식 남편 모시고 살림하며 살다 지금은 퇴직했는데 연금이 나와 사는건 어렵지 않으나 기를 못펴고 산다

 

남편에게 가게도 차려주곤 했는데 하는족족 몇 달도 못가 다 들어먹는다 이유는 이 남자 평생을 고개를 수구릴 줄 몰라 고객 알기를 우습게아니 어떤 손님이 오겠는가  고객에게 반말도 하고, 오면 오고 말면 말고...뭐 그런식으로 했다고 한다  얼굴도 험상궂은데...        난 충분히 안다

 

그 인간이 어떤지 친척들에게 들어서도 알고 우리 있는데서도 부인을 아주 우습게 알고 명령조로 말한다 이러니 친구도 별로 없는 눈치다  형부가 사람이 싹싹하고 비위를 잘 맞추는 성격이라 뻑하면 불러댄다고 언니가 속상해 하며 가지말라고 한다

 

이것뿐이 아니다 그언니 우울중걸려 어디다 말할 때가 없으니 우리언니에게  하소연을 자주 한다 이러니 고모가 그걸 모를리 없고 또 큰아들 계속 속을 썩히고 또 며느리하고도 맞지않아 힘드어하신다  혼자 살고 싶어하는데 혼자 살 돈도 없다 평생을 벌었건만 자식들에게 들어가 당신 방한칸 살 돈도 없는것이다

 

이런분이 수명만 길어 구순잔치를 하는 것이다 과연 행복할까  그 고모를 보며 나도 오래살까봐 걱정이다 내얼굴 보는 사람마다  오래사는 상이라고 한다 몸은 비록 밤낮 골골대지만 얼른 죽는 체질이 아니래나 뭐래나!

결혼해서 멀쩡히 잘사는 동생들이 세상을 너무 일찍 하직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4명이나 동생들을 보냈다

 

글을 쓰다보니 우리집 흉만 늘어놨는데 사실이 그렇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 사는것이 결코 행복은 아니다 수명만 길은 복만 타고나서 질질히 고생하며 살기 싫은것이 나의 솔직한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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