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주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반드시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의미 없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믿는다면 내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났음에 어떤 사명이 있음을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이 사명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아야 합니다. 도망치지 않고 그곳에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삶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물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어떤 효과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행한다면 분명히 앞으로
1mm라도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10월 18일 오전 05:35 '빠타킹 신부의 새벽을 열며'에서 가저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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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의미 없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은다는 것만 믿는다면 자신에게도 어떤 사명이 있음을 알라는것
난 여지껏 살면서 정말로 이것이 궁금했다 여지껏 한것이 없다 한것이라곤 주로 아프고 좀 나으면 놀러 다니고 젊은날 일 쬐금하고 부모님 속은 바글바글 썩히고(자식은 다 속썩힌다 가 아닌 특별히 더 힘들게했다 )
오죽해야 우리엄마 돌아가는날 나 때문에 눈을 감지 못했다고 외삼춘이 말해줬다(타지에서 근무중이라 임종을 못봤다) 죽어가면서도 나를 불렀다고
집에 와서 하얀 홑것을 걷어내고 엄마얼굴을 보니 정말로 떠 있었다 천사가 잠시 죽은것 같아 보였다
언니도 하는 말이 어제 돌아갔고 아무것도 바르지도 않고 향도 안피웠는데 전혀 냄세도 안나고 죽은것같지 않단다 평생 고생만 죽도록 하다 돌아가셨다
자식이란 무엇인가? 이 불효를 지금까지 하고있다
에구!! 엄마는 60대 후반에 아버지는 70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이런말 하면 어떤지 모르지만 지금 자식들 속썩히고 그중에 5명은 이미 죽었다 부모님들이 그꼴을 안봐서 다행이다 오래살면 이꼴저꼴 다 본다는말이 괜한말이 아니다
제 자리로 돌아와서
살면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일 쬐그만해도 밥먹듯이 몸살을 앓는다 그때 비하면 오히려 지금이 나은편 지금은 늙어가니 여기저기, 그거야 인생의 한단면이니 그렇다쳐도 젊은날 몹씨도 방황했다
특히 일은 해야 되는데 젊었으니 오라는데는 많다 또 그때는 우리나라가 수출드라이브로 한참 날리는중이고 사람은 없고 지금처럼 임시직이니 계약직이니 하는말도 없고 들어가면 무조건 정규직이다 외국노동자는 더욱 없었고
근데 일만하면 아펐다 일주일을 못견뎠다 지금 같으면 뽑지도 않았겠지만 그땐 사람이 없었고 할일은 많고
내가 젊었고 나라가 발전하다보니 사람들이 3D를 싫어해 오죽해야 외국노동자들을 데려왔을까
방구석에 틀여박혀 주로 책을 읽었다 팝송도 신나게 들었다 책을 읽을땐 몸이 하나도 안아펐다
중학교 동창인 지금도 여전히 통하는 친구하고 극장쑈도 보러다니고 그러나 영화는 잘 안봤다
지금이야 극장시설이 잘되어 있었지만 내가 20때만 해도 인류극장 아니면 형편없었고 우리동네 00극장은 시장 한복판에 들어왔는데 필름 끊어먹기를 자주하고
극장을 갔다 자리가 없어 뒤에서 서서보는데 왼 남자가 내뒤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것이 아닌가 얼른 나왔다 그뒤로 극장을 90% 안갔다(극장쑈는 맨 앞에서 좀 봤다)
세월가며 나이트클럽에서 유명인들이 나왔다 그런데는 고급스러워 부담은 됐지만 시설은 좋다
중동신도시 들어서며 아파트 당첨되어 들어갔는데 들어간 곳이 하필 가장 중심지이며 공원이 내려다뵈는곳 현대와 엘지백화점(나중에는 롯데로 바뀜)이 들어서고 우리집 정면으로 시청이 들어서며 멀티미디어
CGV와 롯데시네마도 들어선다 대형마트가 이마트를 비롯해서 4~5개 들어서고 상동은 완전히 환락가다
극장이 코앞이니 자주갔다 시설도 A급이고 볼거리도 주의에 많아 자주가게 된 계기가 됐다
(하느님 감삼다 이렇게 좋은자리를 마이홈으로 주시다니요)
나중에 왜이리 좋은곳을 주게 됐는지 알게됬다 집도 남향이고 부자동네고(죄송)
여동생이 사고를 당해 내가 내집에서 간병을 했다 바로 그거다 간병하라고 좋은위치의 집을 주셨다
거기서 바로 앞에 있는 중앙공원을 끼고 있는 순천향대학교대학병원을 자원봉사를 했다 멀으면 안갔을지도
도서관에서도 박물관서도 자원봉사 했지만 그닥 기억은 그저그렇다
병원자원봉사는 환자를 직접 만나기에 추억이 많다
동생을 무려 7년간 간병하고 병원자원봉사 하라고 이곳을 선택해서 준것이 아닌지
세월흘러 동생은 저세상 가고 나도 정들었던 오래살던 그곳을 떠나 서울로 정착했다
나이를 자꾸 먹으니 할일은 적어지고 써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자꾸 회의가 든다 이제 나름대로 할일을 했으니...하면서
이제 고령화가 돼서 무조건 오래 산다는데 남은 생을 잘 살아야 하는데 무엇을 하라고 하실런지 그게 긍금해진다 늙어서 할일이란 찾으면 있겠지만 세상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야 한다 꼭 생산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나와 타인이 세상이 함께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게 뭐가 될련지 ~~~
나도 다시한번 굳게 더 믿어본다
늙어도 내겐 사명이 있을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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