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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시리즈물

노틀담성당과 고딕양식 4부

고딕건축은 어디서부터 누구 ~~언제~~

 

우선 중세시대는 대표적인것이 로마네스크와 고딕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당시로썬 농촌지역에 세워졌던 수도원성당에 적용됬다  둥근아치는 매우 무거웠다 지탱하기위해 당연히 벽도 두껍고 여러가지 받침대들이 두껍고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무게가 나가다보니 창을 크게 낼수도 없어  채광이 약햇다

이런저런 변형을 거쳐 나아간것이 고딕양식이다

 

가볍고 창도 넓고 그것도 신비스런 스테인드글라스도 여러가지 색이 빛을 발하면 그야말로 신비스럽다 하늘높이 솟은 첩탑도 보기좋고 신과 가까히 가는것 같고 실지 당시 철학으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신의 현현이라고 생각했다 창이 많아지자 천장은 높고 뾰족하게 탑은 올라가고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더 높은곳을 항하여, 저 멀리 하늘쪽으로,

 

고딕양식은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온 이주민들이 혼란과 불안을 경험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주민들은 높이 솟아오른 빛으로 가득한 도시성당에서 신의 존재를 체험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위로받고자 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다 힘들고 어려우면 신을 부르며 존재를 체험하고자 한다

요즘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신은 저멀리로 자꾸 멀어져 간다

 

고딕미술이 있다

 

고딕 미술의 주역(主役)은 건축으로 일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카페 왕조의 지배하에 놓여있던 북프랑스가 주된 무대였다. 수도원장 슈제르가 세운 생드니 교회나 상스 본사원(둘 다 12세기 전반)이 시초가 되어, 그 후 약 1세기 동안에 건축의 고전이라고도 할 건축이 속속 나타났다. 교회 대형화의 문제는 궁륭구조와 그것을 떠받치는 벽체공법(壁體工法)의 엄청난 발전으로 단번에 해결을 볼 수 있었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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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제르 Suger(1081년경~1151) 는 수도원에서 자랐으며 후에는 생 드니 수도원의  원장이 된다

그는 성직자이면서 법, 관리, 조직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난사람였다  봉건제에 대항하는 뱃심도 좋았다 왕권을 강화하는등 정치적임 면모도 보인다 

 

생 드니 수도원에서는 수도원의 개혁과 재조직, 재정확립하여  수도원 성당의 재건과 확장을 진두지휘했다 최초로 생 드니 수도원에다 웅대한 고딕식 경당을  그 곳에 건립했다

쉬제르가 얼마나 난 사람인지 루이7세가 부재중일 때 섭정의 한사람으로 임명될 정도였다니

신은 가끔씩 이런 사람이 필요한지 그에게 여러가지 재주와 재능, 좋은머리도 줬다

 

그는 예술품 수집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생 드니 수도원성당에 아름다운 보물들을 보유하고 있어 그 진귀품들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에 "쉬제르의 독수리"는 가장 유명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쉬제르의 독수리'는 그가 신에게 봉헌한 전례용 화병들 중 하나인데 예술적 가치를 높게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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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제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서 유럽과 미국이 놀라고 있는데 중국과 한국에선 별로라고

 

디오데오 월드/국제 2019/04/17 10:24 입력

 

 

[시나쿨파]노트르담 화재 중국인들 환호 이해는 되지만…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

 

# 장면-1 :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하자 대부분 중국인들이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중국인들은 프랑스가 황제의 여름 궁전인 원명원을 불태운 사건을 상기시키며 고소해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1860년 10월, 2차 아편전쟁 당시 황제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되던 원명원을 방화하고 문화재를 약탈했다.

당시 원명원은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군의 방화 및 약탈로 그런 문화재가 모두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원명원 사건에 대해 역사적으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한 누리꾼은 자신의 SNS에 “800년 이상 된 문화유적이 불에 탄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이 원명원을 불태웠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다른 누리꾼도 “원명원은 노트르담 성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인과응보다”라고 썼다.

또 다른 누리꾼은 “프랑스 군인들이 원명원을 불태우고 웃지 않았던가. 프랑스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장면-2 : 한국에서도 일부지만 이와 비슷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위해 국제적 모금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한국 누리꾼들이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

한국의 누리꾼들은 제3 세계 문화재 약탈의 주범 프랑스가 할 말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성당이 불탄 건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긴 한데 돈은 니들이 내야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것만 다 본국으로 반환해도 재건 비용은 나오겠다.”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의 주연 격이자 반환요구 무시 전문가인 프랑스가 복구 국제모금 운운하는 건 꼴 보기 싫다”  

“관광수입은 프랑스가 가져가고 복구비용은 국제적 모금으로? 완전 창조경제다”
“타국에서 먼저 도움을 주겠다고 할 수는 있어도 본인들이 먼저 국제모금을 진행하겠다니 염치가…”등의 댓글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 프랑스는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국이다. 한국도 피해 당사자다. 프랑스는 병인양요 당시 외규장각 의궤 등 우리 문화재를 빼앗아갔다. 고 박병선 박사의 주도로 2011년 임대 방식으로 우리 품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프랑스가 요구하면 언제든지 돌려줘야 한다.

프랑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했다.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장물보관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타국의 문화재를 약탈해 간 프랑스가 자국 문화재의 훼손을 안타까워하며 세계의 모금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한중 누리꾼들의 지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와 관련, 비교적 균형 잡힌 논평을 내놓았다.
“중국인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건에서 원명원 방화 사건을 떠올리는 것 같다. 원명원 방화사건을 잊지는 말자.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손실이다”
sino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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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렇기 많이 약탈해 갔을까? 가장 많이 약탈해간 인물은 나폴레옹 1세다 그가 여전히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섬김을  받는것은 다름아닌 그가 전쟁을 하면서 타국의 좋은것은 거의 힙쓸어 가다시피 했다

다른 나라에서 볼땐 틀림없이 약탈자이고 약탈국이다

 

프랑스에서 볼땐 애국자이고 나라를 위해 그만큼 애쓴 사람이니 사랑받는 것

우리나라 것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것이 있는데 한국에서 한번 돌려달라고 했는데 이걸 프랑스국민들이 절대적으로 반대하여 지금껏 못돌아오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빨리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고딕이야기와 노틀담 성당과 유명성당들을 아는대로 엮어볼 요량이니 틀린점이 있다면 지적해도 기꺼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불로그 저자 올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