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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시리즈물

고흐에 대한 이런저런 글 2부


반 고흐의 활동시기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한 화가는 당시 작품활동을 하던 프랑스 화가 밀레와 코로였고 평생 이 두 화가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미술품 거래를 싫어한데다가 1874년 런던 태생의 한 아가씨에게 실연을 당하면서 인생관이 어두워졌다

그가 왜 가난하면서도 미술품 거래를 싫어했을까? 누구말대로  내 작품을 몇푼 안되는 돈에  팔리고 싶지않은 자존심 때문일까 아무튼 그는 참 헤아리기 힘든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들과 교류가 적었다 사귀었다가도 그의 이상한 성격을 알고는 멀어져갔다 

고갱하고 말을 나누었는데 어디서는 실지 고흐하고 고갱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귀를 짜른것도 여지껏 '이거다'하고 나온것은 없다 다만 츠측만 할뿐 뒤에서 츠측을 설명한다


고흐가 고갱을 찾아가 전날 술에 취하여 고갱의 얼굴에 압생트 술을 뿌린 것을 사과했다. 고갱은 고흐의 사과를 선선히 받아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 고갱이 아를르를 떠난다는 것에 화가 난 고흐는 거리를 걷고 있는 고갱에게 칼을 들고 쫓아가 욕을 퍼부었다. 고갱이 이를 맞받아치자 고흐가 그들의 아틀리에인 ‘노란 집’으로 들어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것이다. 이후 다소 엽기적인 이야기지만 고흐는 잘린 왼쪽 귀를 조심스럽게 포장하여 사창가의 젊은 여자에게 선물했다. 고흐의 이런 행동에 기가 질린 고갱은 다음 날인 12월 23일 파리로 떠났고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다음백과사전, 미스터리와 진실,인물편에서 )


어디서는 둘이가 그림을 놓고 고흐가 아주 멋지다라고 표현하자 고갱이 "넌 그렇게 보는눈도 없냐? 이게 그림이냐?" 하는 말에 화가나  못들은다는 뜻으로 자기 귀를 잘랐다는 말도 있다

아무튼  두 고씨는 서로 괴팍하다


친할때는 언제냐 ?

둘이 신나게 창녀촌을 찾아갈 때라고

암튼 숫컷들은 못말린다 서로 생각이 다른것을 인정하지 않고  싸우고 위대한 화가들도 우리처럼 툭하면 싸웠는데 단 한가지  다정할 때는 자기들의 성욕을 풀때란다 휘파람을 불면서도 갔다고

사창가를 찾는 이유가 걸작이다 사창가를 찾는 것이야말로 연애 놀음에 빠지는 걸 방지하고, 그림을 그릴 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난 이런 설명을 붙히는것 정말 싫어한다 후세에 잘나가니 좋게 사람들 보아준것 같은데 둘은 젊은 남자고 성욕은 인간이라면 가진 기본적 욕망이다 그걸 얼마만큼 절제 하느냐 하고  기분내키는 대로 성욕이 발동하면 가고 했던것 같은데 그들의 그런행동에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후에 공헌이 컸기에 그럴런지도...

그러나 그것을 저런말로 '미화'하기는 더욱 싫다


위대한 작가의 성행위나 옆에 앉은 여자들을 주무르거나 한것을 스승의 기이한 행동으로 봐주는 그런것은 없어져야 한다  암튼 그들은 젊었고 욕망했고 싸우고 투닥거리면서 그림도 후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 그러니 저렇게 예쁘게 말해준다 상관은 없다 고흐는 어찌보면 참 불행했다

좋은 부모님을 두었음에도 자기도 목회자의 길을 걸으려 했음에도 일이 잘 안풀린 것만은 확실하다


고흐는 친구나 가까히 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여자는 더욱 없었다 몇명의 여자가 나오고 사랑을 고백하고 하지만 아무도 그를 받아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창녀를 사랑한적은 있다 창녀는 딸도 있었는데 그런 그를 고흐는 사랑한다 동생한데 그녀하고 결혼하겠다고 하니 동생 테오는 화를 낸다

"어디 사랑할 사람이 없어서 자식딸린 창녀하고 결혼하냐고?"  이 말은 뒤에서 다시 나온다


고흐는 자기의 괴팍한 성격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그러니 항상 고독했다 천재는 고독하다던가 그것도 옛말이다 지금 천재들은 사람들과 친하다


난 고흐가 천재라고 말하고 싶지않다 다만

 그가 불행한 삶을 살을것을 안타까워 한다

고흐는 그래도 남동생 하나만큼은 잘뒀다 형이 맨날 정신은 왔다갔다 하면서 독한 술을 들이키고 돈한푼도 안벌고 디립다 그림만 그려대도 아무소리 안하고  돈을 대줬다


돈만 준것이 아니다 아무도 상대 안하는 형을 두 형제는 친필로 하고싶은 말을 했다 특히 고흐가 먼저 그림에 대해 말하고 현재의 자기심정을 그대로 말하고 그런것으로 보면 고흐는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는데 이걸 고스란히 받아준이가 동생 테호다 아무리 형이라해도 횡설수설(?)하는 사람의 말을 한,두번은 듣는다마는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받고

"테오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빈 센트도 없었을 것이다" 란 말도


 형을 위해 동생은 희생하는데도 고흐는 자기의 기분에 맞지 않으면 화를 자주 냈다

온갖 역경과 시련속에서 형에게 물감과 연필,펜,잉크, 캔퍼스, 종이를 살돈을 대고 옷과 음식을 대주고 집세도 내줬다 이것도 일종의 복이다 참으로 저런 동생도 없다 내가 저런 오빠나 동생, 언니가 있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말한다면 저렇게 하기는 고사하고 별로 쳐다보지도 않을것 1년에 한,두번은 만날것이다

죽었나 살았나 확인해야 될것 아닌가


우리 형제들이 지금은 다 떠나고 언니와 남동생만 남았지만 형제들이 살아 있을적에 우리집으로 자주 전화가 오는데 이유는 대부분 안부전화다 '잘 있냐고' 아프지 않냐고' 하는데  살아있는지 고독사 했는지 확인하기위해서, 사랑하는 맘도 물론 있었다

 에고~~    나는 부모님에게나 형제들에게나 폐만 끼치는 사람이다  이 죄를 다 어찌할꼬!!


고흐는 그래도 살아서는 비참했지만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그의 미술품은 고가이다

비록 그가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900 여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들을 그려냈다 그리면서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테오에게 전햇다 지금같으면 '톡'으로 '이메일'로 전했을지도

바로 그편지가 후세에 동생 테오의 부인에게 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고 그 이후부터는 잘 달리는 계기가 됬다


그의 그림을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서 보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도 고흐미술을 펼친적이 있다고 하는데 못갔다 그때는 고흐이름만 알았지 별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그는 제정신이 아닌 일종의 정신병환자이다

비록 그림을 그릴때 환각속에서 그렸던 정신질환(조울증으로 추측)을 앓았던 그는 죽은지 11년후 파리에서

 71점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진다


그림 한점을 그리고 나서도 테오에게 그림설명도 한다 그 설명이 참으로 보통사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것을  말한다 그는 일반인과 보는 시각이 달랐던것 캄캄한 밤을 깊게 관찰하고 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색깔하나도 그냥보지 않았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사람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