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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잘 되려면....

중앙일보 월요(1월 13일자)일 사회난에  '그 집안엔 4대 이어온 나눔 DNA가 있다' 라는 재목의 글이 있다 사대에 걸쳐 나눔이 이여오고 있다는것

 

 1대인 할머니가 시작해서 그 딸이 하고 그 딸의 아들이 이어받고 그 아들의 아들이 계속 하고 있다 1대에는 전쟁직후라 전부 어려웠지만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데도  보따리 장사를 해가며 사는데 집근처에서 흙을 먹는 고아를 본뒤로 "저런 사람을 돕자"고 가족들을 설득해  쌀, 옥수수 죽을 쑤어 고아와 노인들을 도왔는데 당시 10대였지만  이것을 자연스레 보고자란 그의 딸이 돕는 생활을 하고 계속 이여졌다는것 누구를 돕는다는것은 쉽지않다 잠깐은 할수 있다 이렇게 대를 이어가면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현재 '삼성'이 잘 나가고 있다 한문 배울 때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삼성이 경영을 잘하기도 하지만 그 원뿌리는 이병철 회장의 아버님이  부자이기도 했지만 선행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님의 아버님이 경상도 당시 사는동네, 이웃동네, 어디든 산모가 얘를 낳고 못먹고 있으면 반드시 쌀한자루와 미역을 꼭 갔다 줬다고 한다 즉 가난한 산모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꼭 먹을거리를 챙겼다고 한다

 

  물론 그 후손들이 노력해서 거의 만들었지만  그런 선행이  지금의 三星家가 잘되고 있는데 일조를 한것이라고 한다 즉 조상의 은덕을 입은것이다 흔히 말하듯 조상이 선업을 쌓아야 후손이 잘된다고 한다

 

 내가 아는 K도 내가 볼적에 이런 경우다 그녀는 나보다 몇살 어리다 그래도 얼마나 어려운 사람을 잘 돕는지 후원하는데만 30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한군데 만원씩만 해도 한달이면 30만원이다

 

 그녀가 어렸을적에 집에 방이 3개 있었는데 두개는 쓰고 한개는 세를 놨다 그러다가 자꾸 어려워져서 하나있는 방마져 세를 놓고 살았다 세 한번 놓면 세값을 올릴 줄을 몰랐다 자식들이 우리도 어려운데 세를 올리자고 하면 "우리는 그래도 집이라도 있지!" 하며 세를 안올렸고 전세도 다른데보다 싸게놓고  절대 안올렸고 몇 년씩 살게 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뭐라고 하면 "그 불쌍한 사람들을  내 쫒으면 어디로 가란말이냐 ?" 하면 오래살게 했다  그앞에 마침 경찰서가 있었는데  파출소가 아닌 경찰서니 얼마나 사람이 많은가 이 많은 경찰서를 해마다 김장을 해 줬다고 한다

 

  당시는 거지들이 꽤 많았다 나도 기억난다 내가 어렸을적에 동네에 거지들이 떼로몰려 다니고 매일같이 밥얻으러 다니는 거지들이 많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거지가 지나가다 눈에 띄면 불러다 마루에 않쳐놓고 반찬이 있든없든 뜨거운 물에라도 밥을말아 김치에라도  밥을 먹여 보냈다고 한다

 

  이런것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돕는일을 잘한다   그녀는 돈을 잘썼다  주는일도 잘한다 언니와 동생들이 다 외국에 나가있어 뭘 갖고 들어오는데 그녀는 항상 바쁘고  살림도 안해서 참깨, 화장품, 영양제,  콩을 남미에서 갖고 왔다며  준다

콩은 우리나라 동부콩보다 크고 맛도 좋다  그녀는 한가지 중국식품을 절대 안먹는다 그러다보니 항상 좀 좋은 식당에 가서 먹으려면 일반식사보다 훨~ 비싸다  식사값은 대부분 그녀가 낸다

 

 피정이 있어 일박 이일을 왜관 베네딕또 수도원에서 했다 그녀와 나는  룸을 같이 썼다 외국 여행가서도 2인 1실을 그녀와 함께 했다  이 피정중에  수도원에서 하는 노인복지센터가 있는데 정부의 도움을 안받다보니 재정이  어려워 재원마련을 위해 음악회를 열었다 우리가 갔을 때도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있었다 

 

연주가 끝나면 아랫층에서 바로 기금을 말한다 그녀는 그걸 보더니 대뜸 용지를 가져와 서명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선통에다 얼마씩 넣는걸로 대신한다 그녀는 매월 오만원씩을 하기로 하고 돈을 꺼내고  있었다

 젊은날 한국의 물건을 외국으로 팔았다 보따리상처럼 몇개씩 판게 아니고 한마디로 개인무역을 하고 있었다 

 

 중국 그넓은 땅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지금은 멕시코에 가있다 세계를 밥먹듯이 돌아다닌다 그녀말로는 우리나라가 IMF나서 한참 외화가 없었을 시절에  달러를 몸에 두르고 와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다 지금도  50평이 넘는 그것도 서울의 자리좋은 땅에서 산다 

 

그녀는 다시 외국에 가야하기에 얼마전에 이 집을 외국인에게 세를 놨는데,  자기 방을 정리하며 장농을 치우다 조카가 발견했다 "이모 여기 달러가 있어"  자그마치  한국돈으로(발견된 돈은 달러) 2천만원가량 되는 돈이 장농 치우면서 발견했다고 한다  자기도 그렇게 정신이 없다며 큰일났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정신이 없는게 아니라  돈에 쪼들림을 안받으니 돈이 없어져도 모른다  워낙 크게 장사를 하고 은행에서는 항상 VIP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또 그당시는 건물문제로 개인도 아닌 어떤 회사와 몇년째 재판중이였다 이문제로 그녀는 항상 변호사와 만나야되고 증거수집해야 되고 공부도해야되고 그야말로 눈뜰새도 없이 바뻤다 

 

 그녀가 힘들게 돈벌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우리는 보통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이란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있어야 한다는것

 

영웅은 때를 잘 만나야하고 장삿꾼도 때를 잘 만나야하고 연인도 잘 만나야 한다 그녀가 힘들게 돈벌은 이야기를가만히 들으면 자기가  진솔하게 장사하고 조금도 안속이고 한것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손이 많이 작용한것를 개인적으로 느낀다  그녀도  "하느님이 많이 도우셨어" 한다 그것이 운이고 종교적 언어로는 은총(은혜)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어머니 이야기를 했던것이다

 

어떤사람은 아무리해도 안되는게 있다 우리 여동생은  나와 성격이 다르다 전체적으로는 착하다 성질부릴 때도 있지만, 

   무얼 퍼주는걸 좋아하고 이웃과 잘 어울리고 성질급한 남편 비위맞춰가며  커다란 철물가게를 하며 어린 아들 둘을 기르며 그 바뿐중에도 고추장담고 간장 달이며 열심히 살았다 헌데 한순간의 잘못으로 전신마비되어 10년을 고생하며 살다 52살에 죽었다 말이 10년이지 났지도 않는 병에 돈은 한없이 들어가고 해서 나도 남편도 얼른 죽기를 솔직히 원했다

 

반대로  재부지만 성질 좀 그렇다 인간이 나쁘지는 않으나 나 같으면 그성질 비위 못마춘다 자기 멋대로다 아내에게 다정한 말 할줄 모른다  처형이 보는 앞에서도 가끔씩보면 마구 대한다 어느날은 그래서 뛰쳐나와 다시는 그집에 안갔다  누가 세상을 더 인간적으로 살았는가? 

 

난 너무 착하게 안살을것이다 착하지도 않다 연인들이 내앞에서 포옹하거나 키쓰하면 그냥 넘어가는법이 없다 한마디라도 한다  "뭐야 이거 안보는데서 해야지"   "어른 앞에서 이게 무슨 짓들이야?" 한다 안보는데서, 또  멀직히서 하면 상관없다 옆에옆에서 해도 참견안한다  바로 내앞에서 했다간 누구라도 한마디 듣는다

 

 '잘하면 내탓 안되면 조상탓' 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암튼 우리는 세상을 서로 도우면서 잘 살아야 한다  꼭 조상이 도와줬다는 증거는 없지만 무시하지 못하는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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