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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고향 생각

얼마전 예술공감 선생이 고향하면 생각나는 것을 그려오든지 적어오든지 하라고 한다 이런 과제를 내주면 90%는 안해온다 나도 잘 안하는 편이다 그 전에 인문학을 들었는데 이분이 한주도 안빠지고 과제를 내준다 첨에는 듣는 사람들이 10명정도 해오더니 날이 갈수록 줄어 서너명으로 줄다가  나중에는 나혼자 과제냈다

 

 난 신문에서도 보고 인터넷도 복사하고  짜집기를 하든 암튼 나는 열심히 해갔다 그런데 알아주지(?) 않았다 같은 테이불에 앉은 사람들이 "그래도 열심히 잘 해오네 글을 잘 쓰나봐요" 하는 정도였다 글구 들으면 끝까지 들었지 중간에 슬쩍 나가는일은 없었다

주부들이 핑게대며 중간중간 잘 나간다 어쨌튼 참석은 된것이다 난 진짜 넘~ 바뻐 3번 빠졌는데 수료증을 안주고 생전 과제도 안해오고  1시간 듣고 중간중간 나간 여자들은 수료증은 준것이다 사실 수료증 별거아니다  그담부턴 절대 과제 안해간다 난 강의자가 쓴 책도 2권이나 팔아줬다 글구 자료를 열심히 잘 냈는데 한번도 평가를 안해줬다

 

현제의 예술은 과제를 하나하나 피드백해준다 또 그림이나 글을 설명하는 시간도 준다 강의를 듣다보면 남자강사들이 여자강사에 비해 디테일에 약하고 섬세하지 못하다 인문학 가르친분은 남자분이다  사람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한것을 평가받고 싶어한다 즉 쉽게 말하면 치사한 소리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알아달라는 것이다 열심히 과제 내는대도 그냥 무덤덤 받아가기만 하고 아무말도 안하니 잘했는지 못했는지 피드백이 없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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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사람은 '고향'하니까 그림처럼 고향의 진달래가 생각나 도화지 가득 진달래를 예쁘게 그려왔다 또 어떤인은

잡곡인 조를 그림처럼 잘 그려오기도 했다 그림그려온걸 보면 대체로 그래도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그려온다 노래다 잘 부르는사람들이 마이크를 오래쥔다 난 그림이나 노래를 못해 주로 듣는 편이다 그러나 음악 미술을 해설을 할 수 있다 실기는 못하면서 이론은 아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보듯이 장독대도 있고 그밑에 한줌의 꽃이 피어있고 긴 장대를 비스듬히 해놓고 빨래들이 널려있는 것이다 나도 이 그림에 공감이 간다 인천이 고향인데 어렵게 사는 동네인 용현동에 살았다 그 당시 그래도 방 한칸이지만 우리집이라 마당이 제법있었다 장독대도 있고 꽃밭도 있고,  그림처럼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내 어릴때의 추억은 부모님이 밤낮 싸운것 밖에는 기억이 없다 가난해서도 그렇고 또 그당시는 남자들이 부인들을 뚜드려 패고 도망다니고 하는 집들이 더러 있었다

 

 누구네 아저씨는 술만 먹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난동을 피우는 아저씨도 있었는데 그아저씨집 마당이 울타리도 없고 넓고 지나다니는 길에 있어 우리들은 거기가 만나는 장소다 여기서 사방치기, 고무줄놀이, 자치기, 재기차기, 술레잡기, 또 뭐드라....암튼 굉장히 넓은 마당에 남향이라 겨울에도 따뜻했다

 

 우리 모두는 거기서 만나고 헤어지고, 눈뜨면 그 마당에 가면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 많은 놀이들을 할 수 있었다 술주정뱅이인 주인아저씨는 당시 그래도 인천 학익동 교도소의 교도관인 공무원이라 큰아들 작은아들들을 공부시켰는데 나랑 동급인 딸과 곱사등이 막내가 있다 헌데 나랑 같은 학년(초등생)인 딸을 얼마나 구박하는지 어느날은 술을 먹고 어버지가 딸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질질끌고 가는것을 보았다

 

우리부모는 싸우는데 다행히도 때리지는 않았다 소리지르고 물건을 부수고는 했다 근데 그것이 매일 밥먹듯이 하는 것이다 언니와 내가 길에서 만나면 서로 물어보는 말이 "엄마 아버지 싸우지 않냐" 하는것이 먼저였다

아직도 내 기억에는 그것이 잔상이고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머리기억속에 아무리 좋은걸 집어놓으려 해도 눈만 뜨면 싸우는 부모통에 어린나이에도 '죽어버릴까' 생각하곤 했다 

어느날 나는 엄마에게  "엄마 살기 싫은데 죽으면 안될까?"했다가 된통 혼났다

 

어릴때의 추억은 소중하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좋은 추억을 못 남겨줄망정  상상하기도 싫은 추억은 영원히 자식들에게 쓰라린 상처가 된다 이게 싫어 언니는 가난해도 좋으니 무조건 맘착한 남자에게 시집갔다 지금은 그런대로 산다 젊은날 지지리 고생한것은 말할것도 없다 부부싸움 평생 서너번 했든가 한다 지금도 우리가 봐도 무지 관계좋다 그러니 아이들의 추억도 좋다 조카들은 아버지(나의 형부) 오토바이 소리만 들려도 "아빠 온다~~!!!" 소리치며 달려나간다  언니도 어릴 때 너무 많이 데어서 그런것 같다 

 

고향이야기를 하라니 떠오른는 추억이 안좋은것만 있어서 난 아직도 그당시 침울했던 얼굴상을 못지우고 있다 부모님? 여러분 절대 싸우지 마세요 어쩌다 한두번 다투는건 몰라도 눈만 뜨면 싸우면 미치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안된다 우리 8형제중 5명이 60도 못살고 전부 젊은 나이에 저 세상가고 오빠만 59세를 살다 갔다

어렸을 때 죽으려고 한 죄로 난 아직도 빌빌거리며 골골거리며 약을 달고 살으며 95살까지 사는 상이라 한다 

 

여행다니고  음악듣고 우아한척 하지만 이런 아푼상처가 있는것을 우리형제들만 아는 것이다 

세상은 서로 부딧치며 지지고 볶고 사는것이 삶이라 하지만 난 지지고 볶는 삶은 싫다 조용히 평화롭게 살고 싶은것이 솔직한 맘이다

괜히 그림을 보며 지난날의 내가 생각나 어렴풋하나마 그냥 그려본다  

 안 나무래도 철이 덜 들은것 같다~` ^^    언제 철 들을까! 

 

 

 

 

              

진달래와    잡곡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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