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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어르신들의 배움작품

 

 

벌써 작년이 됬다 지하철 여기저기서 어르신들이 한글 배운것을  나름대로 글을 써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한것이다 읽어보면 대체로 까막눈이었던 자신들이 글을 배우고 나니 여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그림과 함께 글로 나타냈다

내 시대에도 특히 여자들은 집에서 안가르쳤다 나라가 가난해서도 그랬고 또 여자는 남자 잘만나 시집만 잘가면 되지 쓸떼없이 배워서 뭐할거냐는 인식이 강했다

 

아마 요즘 그런소리 하는 부모도 없지만 그런소리 했다간 원시인취급을 받을것이다  그전에는 아들은 어떻허든지 고등학교라도 가르쳤지만 여자들은 잘 가르쳐야 국민학교(초등)만 겨우 가르쳤다 한글 알고 간단한 셈법만 알면 됬지 그까짓것 여자가 꼬부랑글씨 알어서 뭐 하려고?  보통 이랬다

 

또 내시대에도 누나나 여자동생이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위해 공장다니며 아들은 가르쳤고 또 순순히들 그렇게 했다

자식들을 많이 낳고 가난하고 그러니 아들 특히 장남을 제일로 쳐줘 그야말로 논팔아 땅팔아 소팔아 가르쳐 고려대의 상징인 소는 우골탑이라고 한다

내 시대도 이랬으니 나보다 어르신들은 여자들 한글도 안가르쳤다 남자들은 서당이라도 나가서 배웠다

우리의 여자어르신들이 이렇게 서러운 세월을 살았다  한글을 배워서 젤 좋은것은 뻐스타며 물어보지 않아서 좋았고 은행가서 척척 쓰니 그렇게 좋을수가 없고 거리간판을 읽을 수 있어서도 좋단다

 

아무것도 아닌것같지만 무식하면 은근히 무시당하고 더구나 기본인 한글을 모른다면 더욱 그럴것이다 일반 사람들이 볼땐 우수어 보여도 당사자들의 속쓰린 맘은 우리는 모른다 손주에게 무시당하기 싫어  동화책를  읽어달라고 할 때 "할미는  눈이 나뻐서 못읽어!"했단다 은행이나 병원가서도 어떤분은 팔이 아퍼서 못쓰니 대신 써달라고 했고,

딸이라는 것 때문에 부잣집에서도 안가르친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옛날 사람들은 외그리 판단력이 부족했는지 하는 생각이든다 당시는 여자는 사람으로 취급(?)도 안한것 같다 우리할머니는 아마 지금 살아계시면 확실히 몇살인지 모른다 아버지가 1917년생이니까 ~~

 

암튼 우리할머니는 이름도 없다 머슴도 이름 있고 할머니 또래도 이름이 있는데 우리할머니는 이름이 없다 어느날 "할머니는 왜 이름이 없어요?"    "지지배라고 아버지가 이름도 안져줬어!"

호적에 올려야하니 아버지 성을 따라 그냥 '이씨'라고만 올려있다  호적에 올린것만도 다행이다

 

 할아버지는 충청도 두메산골에 살았는데 우리아버지를 첫째로 낳았고 그 뒤로 줄줄줄 딸만 4인지 5명인지 낳았는데 내가 아는 고모들은 세분만 있다 나머지는 일찍 죽었다고 한다 근데 딸을 줄줄 낳아서 그런지 막내고모는 몇년이 되도록 호적신고를 안했서 아버지가 면사무서 가서 직접 이름을 지어 올렸놔 다섯살이나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 옛날 딸들은 서러움을 당하며 살았다  그래도 우리엄마는 한글을 줄줄읽고 쓸 줄도 안다 가끔씩 달력에다 무엇을 적어 놓을때가 있는데 아무리봐도 도대체 무슨소린지 모를때가 있다  

어느날 '소교'라고 적혀있는데,     도대체 소교가 뭔가? 

 동생도 갸웃거리고 해서  물어보니 '석유'를 엄마는 항상 '소교'라고 발음해서 그대로 적은것이다

엄마도 처녀때 학교를 안보내줘 답답해서  어깨너머로 혼자배웠고  안잊어 버리려고 부엌 불 때면서 까만부지깽이로 땅바닥에다 써가면서 글을 배웠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우리부모는 연도(가톨릭서 죽은자를 위한 긴기도문)를 자주다녔다  이 연도는 보통 수십명이 나눠서 가락에 맟춰하는 한국에만 있는 유일한 기도이다 김수환추기경님 돌아가셨을 때도 수녀와 신자들이 연도를 했다

이 연도는 상당히 길어서 외워서 하는것이 아니고 책을 보며 한다 엄마 또래도 글씨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머~엉 앉아있고 글을 아는 사람들만 책을봤다  엄마는 당당히 책을보며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날은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아~ 글쎄 그사람 알고보니 '가'짜 뒷다리도 모른데!" 초상집 갔다와서 엄마가 하는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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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 90살 넘은분도 창피함을 무릅쓰고 배운것을 전시하며 소원의 기쁨을 나눈것이다

우리나란 교육률이 높기로 세계에 1위다 현재는 대학가는률도 세계의 1위다 문맹률이 세계에서가장 얕다  요즘은 한자식만 낳으니 더하다 내시대도 보통 두명씩만 낳아 남녀차별없이 가르쳤다

 

요즘은 학력인풀레가 높아서 큰일이다 인구는 줄고 학교는 한때 왕창 늘려놔서 요즘은 돈만 있으면 들어간다 공부에 취미없고 적당히 하려는 학생들은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데 고졸학력으론 어디가서 명함도 못내미니 아무대학간판이라도 따 놓을려고 한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이런 저급문화는 빨리 없어져야 한다

 

 환경미화원 뽑는데 대졸자들이 아주 많다고한다 미화원이 대학나온사람 하지말라는 법은 없지만 수천만원 들여 빚까지 져가며  간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요즘은 대학생들 졸업하면서 바로 빚쟁이가 된다 학비를  대출받아 공부했으니 갚아야 하기때문이다 취업도 어려워서 졸업을 미루고 ..

 

그전에 뉴스에 나온것인데 좀 오래됬다 지금도 기억한다 누나가 자기는 겨우  초등학교만 나오고 공장다니며 남동생을 대학교까지 학비를 대주며 가르쳤다  이 동생이 나이차서 결혼을 하고 사는데 누나는 그 세월동안 어려워져서 어느날 동생을 찾아가 어렵게 됬으니 조금 도와달라 했다

한마디로 딱 거절했다 특히 손아래 올캐가 안된다고 말했다 가르친건 어쩔수 없는것이지만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히 거절해 너무 분해서 그럼 여지껏 남동생 학비대준것 내놓으라고  계산해서 소송을 냈다

그 뒷이야기는 모른다 이게 한참 매스컴을 탔다

 

그 누나는 내 또래다 한마디로 바보같은 짓을 한것이다 자기살 몫을  챙겨가면서 학비를 줬어야 하는데  부모처럼 누나가 온 힘을 기울여 밤샘근무하고 몸이 부셔져라고 일을 해 몸도 많이 망가(?)졌다고 한다  그 누난 결혼도 못했다 오직 집안의 남자인 남동생 하나 잘 가르쳐놓면 집안이 잘되는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니 몸은 아프고 자기몫이 없어 돈 달라면 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것이다

 

옛날 부모들 힘들여 공들여 대학,유학 보내놓고 결혼시키니 며느리만 좋은것이다 그냥 결혼시킨것으로 만족 해야되는데 어떻게 길렀고 가르쳤는데 하는 맘에 당당하려고 하지만 며느리 입장은 다르다  "당신들의 아들은 맞지만 이미 결혼해서 내 남자이다 도와줄 수 없다" 보통 이렇게 말한다

자식 잘길러 한몫 보려는 생각은 이젠 접어야 한다 아직도 이런 낡은 생각가진 부모들 있다

 

암튼 지금 시대가 좋아져서 늦게라도 배우니 다행이고 간판글씨 볼 줄 알아서 좋고 ..

"배움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배운 고통은 영원하다"

"공복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배운것에 대한 고통은 오래간다"   -어느 유태인의 랍비가-

학력차별은 없어야겠지만 세상은 그렇치않다 아는것만큼 보인다

 

여기 이분들의 작품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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