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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대화 하려면 4부

전쟁의 한가운데 있으면 인간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머~엉 누가 무슨 말을 모를때가 많다

그래서 전쟁겪은 사람들이 살아돌아와서는 휴의증에 시달리는....즉 트라우마다

국가가 불러 실컨 죽도록 고생하고 왔는데 비난받는  경우 상처를 건드리니 상대방은 길길히 뛴다

'람보'처럼 근육질이고 총도 잘쏘고 훈련된 몸이라면 몰라도 ..

 

'람보2' 영화보면 국가의 일을 충성스럽게 잘하고 있는데 결정적인 순간 헬기는 람보를 외면하고 떠나버린다

작전책임자 머독을 응징하러 간다

당시 람보영화가 한창 유행할 때 남자들은 거의 봤을것이다 '실버스타 스탤론'의 근육질과 잘 싸우는 장면들

이때 나는 영화를 거의 안봤는데 람보2는 봤다

 

문화적으로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대들은 자기가 아는 겪은 세상만 알기쉽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다

얼마전에 보니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성들의 몸이나 타인의 몸을 터치하고 잡힌 사람들이 대부분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국가 사람들였는데  그것이 잘못인지 잘 모르더라는것

그네들 나라는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다

 

우리도 지금은 외국을 밥먹듯이 가지만 내가 어렸을적만해도 외국 특히 유럽이나 미국가기는 정말 힘들었다

한창 이민도 있었고 성공한 한국인들이 부모을 불러 여행도 하게하는데 한국의 노친네들이 미국 어린아이들의 그것을 이쁘다고 만지는 바람에 큰일을 치루는 ~~~~

 

이제 지구촌이 아니고 지구동네다

세계에서 방금 벌어진 일이 금방 인터넷으로 전해져 안방에서 들어누어서도 다 알게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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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는 원래 인디언의 땅이다 어느날 백인들이 들어오며 맘대로 자기들 소유로 차지한다

무자비한 살륙도 하고 인디언들에게는 꼬딱지만한 땅을 주며 그곳에 함께 살라한다

마지막 전투가 끝나갈무렵 백인들에게 인디언들의 거주지를 팔것을 권했다

이말을 들은 시애틀 추장은 당시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워싱턴주 최대의 도시인 시애틀의 이름은 이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

 

 시애틀의 편지

수꾸아미쉬의 인디언 추장 '시애틀'이 보낸 편지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냈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 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 '못' 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황색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하여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 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 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나날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 있지도 않다. 몇 시간, 그리고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 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 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도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홍인을 지배할 권리를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 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황색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 수꾸아미쉬(Suquamish)의 추장, 시애틀(Se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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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어느 백인이 어느 문명인이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더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기네들이 땅을 팔지 않으면 어떡게 되리라는것을 알아 할 수 없이 협상한다

 

여기서 한가지 인디언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고 숨쉬고 땅도 사랑하고 하지만 그런 신령스런 자연과 땅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없었다

소유의 개념은 없고 그저 누리고 나누고하면 행복했던 것이다

 

또 하나 백인들이 믿는 神을 지목하며 너희들이 그토록 믿는 신은 너희의 소유가 아닌 너희를 사랑한 신이라면 우리 홍인들도 사랑하는 신일 것이다

 

어떡게 하늘과 땅을 사고 팔수 있는가?

그들에게 사고 팔라는 것은 아주 생소하다 인간이 땅에 속하는것이지 땅이 인간에 속하는것이 아니다

오늘날 '추장의 선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애틀의 이 답신은 소위 문명화되고 현대화된 인간들에게 커다란 수치와 함께 삶과 자연에 대한 뛰어난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명문장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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