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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시리즈물

노틀담 성당과 고딕양식 10부

딕의 원천은 프랑스라 했다 고딕의 아름다움은 '생드니' 성당을 최초로 지으면서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물론 건축물을 본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당시로썬 그랬다 소문이 급속히 유럽으로 퍼졌다


실제 생드니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변천을 보여주는 최초의 건축물이다

이거뿐만이 아니라 사르트르와 상 리스에 있는 성당들과 함께 12세기 후반 프랑스 고딕양식의 성당을 대표하는 것의로 의미가 크다


누군 영국과 독일의 고딕 부흥은 프랑스의 고전주의와 군사적 신장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이 되었다고 말한다

같은 유럽이 한쪽에선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치가 발전하고 하니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을것


그러면 프랑스의 고딕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앞장 어딘가에 적어놨다 그런데 보는 사람에 따라 학자에 따라 다르게도 본다 프랑스 대혁명에 일어난 가톨릭교회에 대한 공격의 반성을 들 수 있고 국가적 미학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고전주의 미학에 대한 반항이라는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인들도 문화적, 정치적인것도 고딕에서 찾으려고 했다


대혁명 공포정치 시대가 열리자 많은 성당과 수도원 등 파괴되고 약탈되고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너무 공포적으로 나가 아름다운 건축물이 파괴되니 혁명가들 중에도 문화재 파괴에 비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DNA를 가진 민족같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신앙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있었고 샤토브리앙의 『그리스도의 정수』에서 영혼의 안식을 재발견했다



샤토브리앙 François-Auguste-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프랑스 낭만주의의 초기 작가이다 그리스도교에 귀의했고, 1802년 <그리스도교의 정수>를 썼다


그리스도교의 정수가 출판한 해에 빅토르 위고가 태여났다  위고는 14살때 그의 일기에 "나는 샤토브리앙가 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하고 썼다 그러니  위고의 걸작 '노틀담의 꼽추'(1831발표)는 샤토브리앙의 향기를 맏아 글을 쓰지 않았는지 사람들은 전부 그렇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사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1145~1250)을 쓴다

사르트르 대성당은 원래 1145 시작했는데  1194년 대화재로 서쪽부분이 소실되면서 어디에서는 연도를

1194~1260년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로마네스트 양식을 기초로 하며 화재가 난 후 30년에 걸쳐 재건축한 성당이다 하지만 초기 고딕 양식의 걸작품인 성당의 외관은 동시대의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16세기 첨탑을 제외하고 크게 개조되지 않았다


평면은 파리의 노트르담과 비슷하지만 내진부는 모두 5개의 앱스와 제실이 있다 탑이 두개인것도 다른면

플라잉 버트레스의 응용으로 횡압의 두려움을 이겨내며 6분 리브볼트를 안쓰고 네모꼴의 4분 리브볼트를 채택한것도 변화를 주었다



건물 자체는 그닥 다른 랭스, 아미앵성당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휼륭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역시 3개의 출입문이 있으며 여기이 장식된 조각물 중에는 프랑스 미술의 최고 걸작품도 있을 정도란다

특히 남, 서,북측의 3면에 3개의 출입문을 가진 현관형식은 오직 이 성당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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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는 초기 중세 시대부터 주요 성지 순례 장소이자 최종 목적지여서, 많은 사람이 몰렸다. 전설에 따르면 876년부터 이곳에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낳을 때 입었던 겉옷이 보관됐다고 하는데, 그것을 ‘산타 카미시아’(Santa Camisia)라고 부른다. 그것 때문에 이곳은 유럽에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순례지의 중심이 됐다

 

원래 이곳에는 1145년에 건립된 로마네스크 성당이 있었는데, 1194년 화재가 발생해 크게 훼손됐다. 그러나 기적처럼 성모 마리아의 옷을 보관한 보물실은 불타지 않아 ‘산타 카미시아’는 온전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전역으로부터 성당 건축을 위한 헌금이 모였고, 자원봉사자들이 앞 다퉈 샬트르를 찾았다.


 1194년부터 1220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정성과 힘을 합쳐 현재의 고딕 성당을 완성했다. 이 성당 내부는 라틴 십자가형이며 길이 130m, 폭 46m, 높이 113m이다. 서쪽 정면의 종탑 등 일부에서는 그 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축을 볼 수 있다.

 

이후에도 성당의 크고 작은 공사는 계속됐고 내·외부 성물들도 갖췄다. 오랜 세월과 전쟁,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도 샬트르 성당은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됐다. 이 성당은 건축사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1979년에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퍼런글은 굳뉴스 자료실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3) 샬트르 대성당의 건축과 유리화 그리고 조각품들 2017-04-03 ㅣ No.348에서 가져온글임을 밝힙니다)


















서북쪽에서 바라본 샬트르 성당 전경.굳뉴스 자료실서 가져옴








샤르트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한조각임





실제로 성모님이 입었던 옷이다 화재가 났어도 이옷만큼은 안탔다

           옷을  산타 카미시아’(Santa Camisia) 부르는데 나도 이 회귀한 사진을 귀하게 얻었는데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공개한다

오래전에 세계의 다큐멘터리로 기억한다 tv에 나왔던것


사조 : 성모님의 옷과 카미시아라고도 부르고 튜닉이라고도 한다 이사진과 윗 스테인드클라스

         한조각은 내가 잘 간직하고 있는 사진들




계속~~~~~~